직장인 김 모(31)씨는 펀드 가입을 위해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장 근처의 은행을 찾았다.
펀드 신규 가입 의사를 밝히자 펀드판매 상담원은 투자자 성향 파악을 위한 설문지 작성을 요청했다. 작성결과 투자성향 '위험중립형'이 나온 김씨에게 펀드판매 직원은 그에 맞는 상품을 추천했다.
해당 상품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끝난 뒤 펀드에 가입한 그는 상담사의 설명을 제대로 들었는지에 대한 투자자 체크리스트도 작성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1시가 넘었고 김씨는 점심도 굶은 채 회사로 달려갔다.
투자자 보호 내용을 담고 있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지난 4일 시작된 뒤 1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은행 및 증권사 창구에는 불만의 목소리만 높아지고 있다. 투자자 보호를 목적으로 실시된 조항들이 고객과 상담사들의 불편만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고객들은 자통법 시행으로 펀드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투자자 정보 파악 △투자자 유형 분류 △투자자에게 적합한 펀드 선정 △펀드에 대한 설명 △투자자의 의사 확인 △사후 관리 등 총 6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는 자통법 시행 이전의 2~3배 수준인 30분에서 1시간 정도가 소요돼 고객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청담동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최 모(35)씨는 "예전에는 상담원과 투자 성향 및 상품 정보에 대해 얘기하고 20분 정도 만에 상품에 가입했었다"며 "자통법 시행되고 나니 펀드 가입에 대략 1시간 정도가 걸려 시간적 손실이 크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또 "자통법 시행 이전과 상담 내용은 비슷한데 이를 단지 규격화 시킨 느낌이 강해 정말로 고객 보호가 되는 게 맞는 지 의심스럽다"고도 말했다.
펀드 투자에 익숙한 고객들은 굳이 상품 설명을 세세하고 듣지 않더라도 상품에 대한 분별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통법은 이들 투자자에게도 동일한 절차를 요구한다. 투자자정보 파악 절차 거부 확인서에 서명해 일부 단계를 생략해 시간을 아낄 수는 있지만 여기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펀드판매 직원들도 불편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
서울시 중구 소재의 시중은행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은 "고객들에게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내용들을 고객들이 이미 파악하고 있는 데도 설명해야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본다"며 "투자 상품에 대한 리스크와 세밀한 정보를 모두 알려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 모(31)씨는 "가입하려던 펀드상품의 내용이 어려워 상담사에게 설명을 듣기 위해 은행을 찾았지만 상담시간이 꽤 길어지자 상담원에게 '펀드 공부 좀 하셔야 겠다는' 핀단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길어진 상담 시간이 상담사에 부담을 주고 있는 셈이다.
또 투자상담시간이 길어지면서 상담직원들의 영업 활동에 제약이 걸리고 있다. 경제 위기로 최근 금융상품에 대한 인기가 크게 떨어지기는 했지만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벌일 여유가 줄었기 때문이다.
"자통법은 자기통제법의 약자 같다"고 말을 꺼낸 한 증권사 직원은 "자통법 시행으로 고객 및 상담직원의 불편은 물론 영업력 악화가 걱정된다"고 갑갑한 심정을 내비췄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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