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 707기는 1978년 4월 20일 파리를 출발해 경유지인 미국 앵커리지를 향하다 소련 영공을 침범, 소련 공군기의 공격을 받고 무르만스크 남쪽 200마일 지점의 이만드라라는 얼어붙은 호수에 비상 착륙했다. 당시 사건으로 승객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정부는 다음날인 21일 전 재외공관장에게 한국인 36명과 일본인 48명 등 승객 97명과 승무원 16명을 태운 KAL기 실종 관련 사실에 대한 공문을 발송했으며 같은날 오후 5시 공식 발표문을 통해 실종 KAL기가 소련에 강제 착륙했음을 확인했다.
외무부는 이어 22일 전 재외공관장에게 보낸 문서에서 소련이 승객 및 승무원을 보내주기로 한 것을 알리는 한편 강제 착륙에 대해서는 확인 중인 만큼 이에 대해 일체의 추측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기장과 항법사를 제외한 전원이 소련을 출발한 다음날 담화를 통해 소련에 대해 깊은 사의를 표하는 한편 아직 억류돼 있던 2명의 승무원의 조속한 송환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각국 언론은 박 대통령이 수교 관계도 없고 북한의 지지국인 소련에 이 같은 표현을 한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국내외 언론은 특히 박 대통령의 이례적인 사의 표시가 소련으로 하여금 억류했던 2명의 승무원을 순순히 석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억류됐던 2명은 박 대통령의 담화 발표 닷새 뒤에 한국 측에 인도됐다.
이런 정부의 신중한 대응과는 대조적으로 이타르타스를 비롯한 소련 언론을 재외한 대부분의 국내외 언론은 민간 항공기에 사격을 가한 소련에 대해 일제히 비난을 가했다.
각국 언론은 기사와 사설을 통해 어떤 경우라도 민간 항공기에 군용기가 총격을 가할 수는 없다는 태도를 보였으며 특히 벨기에는 소련의 행위를 두고 '해적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으로 외교문서는 기록하고 있다.
다만 당시 소련의 국영통신사인 이타르타스는 '남조선 비행기 보잉 707이 소련 영공을 침범, 전투기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다가 2시간 후에야 얼음 호수에 착륙했다'고 KAL기의 영공 침범 사실을 부각해 보도했다.
당시의 KAL 707기 조종사는 기계 고장과 위치 오판이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하게 된 원인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발생 이후 소련에 억류됐다 풀려난 조종사 김창규 기장과 항법사 이모 씨는 주한 덴마크 대사와 가진 면담에서 "항공기의 방향을 알려주는 '자이로 나침반'이 고장나 소련 영공을 침범하게 됐다"고 말했다.
두 승무원은 또 사건 당시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로란 스테이션'(지상에서 발사되는 전파로 항공기 위치 파악을 돕는 기지)이 모두 철거돼 항로를 이탈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기장과 이 씨는 소련에서의 심문 과정에서 이유 불문하고 결과적으로 영공을 침범한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했다고 외교문서는 전했다.
그러나 KAL기가 소련 공군기의 착륙 유도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경위에 대해서는 소련 측이 KAL기에 영공을 침해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주장한 반면 두 승무원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신호를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어 양측의 주장이 엇갈렸다.
당시 KAL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한 소련과 그 뒤를 이은 러시아가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정확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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