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을 지낸 윤공희 대주교(86)에 따르면 윤 대주교는 계엄군이 시민군에 밀려 광주 도심 외곽으로 후퇴하고 봉쇄작전을 펼치던 1980년 5월 23일 김 추기경의 서신을 전달받았다.
김 추기경은 1장짜리 서신에서 "광주에서 많은 사람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크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평화적으로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다급하게 쓴 듯한 짧은 편지 속에는 당시로서는 큰 액수인 1천만원이 현금으로 동봉돼 있었다.
김 추기경은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과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손수 편지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광주로 진입하는 교통수단이 통제돼 편지를 전해줄 길이 없었던 김 추기경은 군종신부를 통해 편지를 광주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군과 계엄군이 대치했던 광주 서구 화정동에서 예기치 않게 편지를 전해받은 광주의 사제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고 윤 대주교는 전했다.
윤 대주교는 "군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내란죄로 몰아가고 서슬퍼런 검열이 존재하고 있던 시절이라 편지 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기지는 못했지만 광주 시민의 안전을 걱정하는 김 추기경의 마음은 충분히 느껴졌다"고 말했다.
동봉된 1천만원은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 맡겨져 부상자 치료와 구속자 영치금 등으로 쓰였다.
광주 항쟁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김 추기경은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지 선정에서도 광주를 가장 먼저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은 이에 첫 공식일정을 광주에서 시작했고 미사가 예정됐던 무등경기장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시민들이 계엄군으로 인해 무참히 희생된 장소인 금남로와 옛 도청 앞 광장을 차로 한 바퀴 돌며 시민의 연도에 화답했다.
이후에도 김 추기경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가슴아팠던 일은 광주의 5월"이라고 말하며 고통스러운 심경을 밝혀왔다.
그는 언젠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고통을 겪었을 때가 그때였다. 사태가 그대로 알려지지도 않고…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봤지만 먹혀들어가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은 것 같으니까…"라고 안타까웠던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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