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에서 몸값을 높여온 엔화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엔 캐리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둔화되면서 엔화 가치가 약세로 기울 것이라는 전망이 세를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지난 주말판에서 엔화가 '안정 통화'(haven currency)로서의 매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엔화는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강세를 유지해 외환시장에서 효자 통화로 인식돼 왔다. 특히 저금리인 일본에서 해외 고수익 자산으로 흘러들었던 엔 캐리트레이드 자금이 시장에서 빠져나가면서 엔화 가치는 급상승했다.
실제 세계 금융시장을 마비시킨 지난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에도 엔화 가치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14% 올랐고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에 대해서도 각각 29%, 43% 급등했다.
하지만 지난주 외환시장이 최근 3개월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자 엔화 가치도 약세로 기울어 지난 19일 엔/달러 환율은 올 들어 가장 높은 94.46엔을 기록했다.
이처럼 상황이 돌변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몇 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선 나카가와 쇼이치 일본 재무상이 사임을 표명한 것이 엔화 가치를 깎아내렸다는 지적이다. 나카가와 재무상은 지난주 열린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해 술에 만취한 상태로 기자회견를 가져 빈축을 사다 최근 사임 의사를 밝혔다. 아소 다로 일본 총리의 최측근인 나카가와의 사임은 아소 내각의 지지도 추락으로 이어져 정부예산 추가안도 난관에 부닥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엔화 약세의 또 다른 원인은 수출 중심의 일본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일본 정부는 지난 16일 계절적 변수를 빼고 연율로 환산한 작년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2.7% 후퇴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70년대 초반 오일쇼크 이후 35년만에 최악의 성적이다.
엔 캐리 청산 움직임이 둔화되고 있는 점도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 수년간 엔화 가치는 엔 캐리가 붐을 이루며 약세를 유지해 오다 일본의 제로금리시대가 막을 내리고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엔화 가치는 상승반전했다. 엔 캐리 자금의 청산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 캐리 청산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리 하드먼 미쓰비시UFJ 애널리스트는 "금융업계에서는 엔 캐리 청산이 거의 끝났다고 보고 있다"며 "최근 엔화를 강세로 몰고 간 중요한 추진력 하나를 잃은 셈"이라고 말했다.
도쿄 외환시장의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엔화가 약세로 기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이들은 지난 2006년 이후 처음으로 엔화 매수세(롱 포지션)를 유지하고 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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