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정부와 은행장들은 중소기업 지원에 한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그러나 시장에선 아직도 중소기업에게는 신용이 높건 낮건 간에 자금을 얻어 쓰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특히 은행들은 자신들의 몸 보전에만 급급한 나머지 대출담당자들은 해당기업의 자금줄을 더 조이고 있다는 중소기업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많은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코스닥기업 ‘I’은 지난해 겪은 황당한 사건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어 큰 고민에 빠져 있다.
이 회사는 5억원 규모의 전환사채 만기를 앞두고 자금의 여유가 없자 채권자들과 협의를 통해 조기상환청구에 대한 원리금 지급 기한부 유예를 추진했다.
그러나 시중은행 중 하나인 사채 원리금 지급대행계약을 맺은 ‘W’은행의 담당자는 자기 멋대로 증권예탁결재원을 통해 전환사채 발행당시 계약 조건에 따라 조기상환( 이른바 PUT옵션 행사)을 요구한 채권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상환해 버렸다.
사채원리금 지급대행계약이란 말 그대로 회사채 발행사가 채권자들에게 원리금을 지급함에 있어 발행사의 자금을 발행사를 대신하여 채권자에게 지급하는, 즉, 지급만 대행해주는 계약인데, 발행사측이 원리금을 지급할 잔고가 없었음에도 은행측의 실수로 은행측 고유계정 자금으로 지급을 해버린 것이다.
회사에는 일방적인 상환 후 결재된 금액을 갚으라는 통보만 했을 뿐이다.
이에 ‘I’기업은 일방적인 W은행의 처사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고 은행은 부랴부랴 해당지점의 지점장과 담당직원을 징계하는 수준에서 내부단속을 마무리 지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W은행은 I기업에게 결재된 금액을 조속히 상환하지 않으면 해당 직원들이 징계를 받을 수 있다며 조속한 상환을 요구했고 거래은행 직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I기업 대표이사는 직원들 급여조차 지급되지 못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몇천만원씩의 자금을 은행에 지난해 7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상환해 왔다.
그러나 W은행은 I기업의 주거래 은행 통장들에 가압류를 실시해 회사는 더 이상 정상적인 경영활동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상황에서 W은행은 회사 측에게 담보를 요구해 계열사 공장의 임차보증금과 주력계열사의 지분 전량 등 총 9억여원 가량 담보를 받아냈다.
이후 W은행은 담보와 함께 현금 2억원 정도를 상환하면 가압류된 통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해 회사는 부랴부랴 자금을 준비했지만 은행 측이 갑자기 말을 바꾸는 바람에 사채시장에서조차 큰 신용도를 잃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회사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대행계약만으로 채권자들에게 자금을 상환해 버린 W은행의 행동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W은행은 또 부도날 기업을 막아줬는데 “I기업이 적반하장식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황당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부도란 어음이나 수표를 가진 사람이 기한이 되어도 어음이나 수표에 적힌 돈을 지불받지 못함을 일컫는다.
회사채는 만기가 도래하면 채권을 보유한 채권자들과 협의를 통해 얼마든지 만기를 연장할 수 있다. 이 경우 채권자에게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하는 게 상식이다. 세계 어느나라에서 회사채 만기 때문에 부도가 나는 기업이 있었는지 W은행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
은행과 회사간 원만한 해결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규정대로 할 뿐이라는 입장만 내 놓고 있다. W은행은 직원들의 안위만을 생각한 채 I기업을 자신들의 말대로 부도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은행은 아직도 일반 서민이나 중소기업에게는 문턱이 높은 게 아닌가 한다. 서민과 기업들이 한푼 두푼 모아준 자금과 서민들이 필요자금을 빌려간 후 꼬박꼬박 상환하는 이자를 통해 자신들이 밥을 먹고 가족들이 살아가는 밑천이라는 걸 아는지 참으로 한탄스럽다.
조윤성 기자 co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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