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국가 위기에 수출업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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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2-2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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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유럽 주요 국가들이 부도 위기에 놓이면서 이 지역을 상대로 투자와 영업을 해온 국내 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성장에 목마른 기업들에 기회의 땅으로 여겨진 동유럽의 경제 붕괴는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겹쳐 충격을 더하고 있다.

   자칫 국가부도 사태가 현실화해 해당 국가의 정부가 경제적 통제력을 완전히 잃게 되면 국내 기업들은 현지 법인의 정상 가동 자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다만 동유럽 생산 조직과 시설이 상당 부분 서유럽 시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앞으로 시장 회복기도 염두에 둬야 하는 만큼 기업들이 당장 철수 등 극단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 수출기업 타격…현대.기아차 동유럽행 선적 64%↓ = 동유럽의 위기는 실제 한국 기업들의 수출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현대.기아차가 동유럽 수출을 위해 국내에서 선적한 차량은 모두 6천126대로, 작년 같은 달보다 무려 64%나 급감했다.

   특히 동유럽 시장 성장을 염두에 두고 최근 관련 지역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현대.기차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차는 11억 유로를 들여 체코 동북부 오스트라바(Ostrava)시 노소비체(Nosovice) 지역에 생산 공장을 건립해 작년 11월 가동을 시작했다.

   연간 생산능력이 20만대에 달하는 이 체코 공장은 현재 준중형 해치백 'i30'를 생산하고 있다.

   애초 현대차는 2011년까지 연간 10만대의 생산설비를 추가해 총 3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유럽 고객 취향에 맞는 소형 미니밴도 여기서 만들 계획이었으나, 동유럽 경제 위기로 계획을 수정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기아차도 지난 2007년 4월 동유럽을 비롯한 유럽 공략을 목표로 슬로바키아 질리나(Zilina)시에 연간 생산능력 30만대 규모의 종합 자동차 생산공장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현재 준중형 해치백 '씨드'를 생산하는 이 공장 건립에는 총 10억 유로가 투자됐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동유럽 시장이 급부상할 것으로 보고 현지 시장 상황에 맞는 탄력적 생산체제를 운영하기 위해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공장을 세웠다"며 "경제 위기 속에서 애초 설정한 투자 효과를 거두려고 대응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루마니아에 스테인리스 가공 공장을 둔 삼성물산은 최근 동유럽 경제위기로 판매 실적이 떨어지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물산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판매처를 다각화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 동유럽 전자공장 대상은 서유럽.."그나마 다행" = 전자업계 역시 대부분 주요 기업들이 동유럽에 생산법인과 판매법인 또는 지사를 두고 있다.

   이 지역 물류비용과 임금 등이 저렴하기 때문에, 주로 서유럽을 겨냥한 생산 전진 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두 곳에 LCD를 비롯한 TV 생산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각 생산법인의 한 해 순이익이 1천300억 원을 웃도는 등 여러 해외 법인 중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외형을 갖추고 있다. 판매법인은 폴란드·체코·불가리아·루마니아·세르비아 등 여러 나라에 진출해있다.

   삼성전자도 현지 주재원 등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를 보고받는 등 동유럽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지만, 아직은 해외 조직 운영에 변화를 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전체 유럽에 미칠 경제적 파장을 우려, EU가 동유럽 국가들의 파산을 좌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데다, 삼성의 동유럽 생산 제품들이 대부분 현재 동유럽보다는 서유럽에서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폴란드 무와바, 브로츠와프 두 시(市)에 TV·모니터·냉장고 등을 생산하는 공장을 갖고 있다. 두 공장의 생산규모는 각각 연 400만대, 300만대 정도다.

   LG전자 관계자는 "폴란드 공장들은 서유럽 판매를 위한 생산기지 성격이 강하고, 체코·헝가리·루마니아·폴란드 등 동유럽 판매법인의 매출도 서유럽과 비교하면 상당히 적은 만큼 동유럽 위기의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7년 이후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LCD 모듈 공장을 운영하는 LG디스플레이도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월 50만~60만대의 TV용 LCD가 글로벌 TV 세트(완성품) 제조업체들에 공급되고, 동유럽 지역으로의 직접 판매가 거의 없는 상태다.

   삼성SDI 역시 헝가리 부다페스트 북쪽 괴드에 PDP 모듈 공장을 두고 있지만, 생산한 모듈을 오직 삼성전자 유럽 법인들에만 공급하는 구조라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건설 부문도 GS건설과 SK건설이 각각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 진행하던 LG전자 공장, 플랜트 건설 사업 등이 모두 2~3년 전에 끝나 속 편한 상황이다.

 
◇ "어려울 때 신뢰 주면 회복기에 효과" 목소리도 = 업계는 대체로 화폐 가치 하락에 따른 동유럽 지역의 구매력 저하로 해당 지역 실적이 나빠지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성장 잠재력 등을 고려할 때 실제로 일부 국가의 파산이 가시화된다 해도 섣불리 동유럽 시장에 대한 투자나 영업을 급격히 줄이거나 철수 등을 논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 1998~1999년 러시아 모라토리엄(국가부도) 당시 소니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 재빨리 모두 철수한 데 반해 삼성과 LG 등 한국 기업들만 끝까지 남아, 브랜드 및 제품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고 경기 회복기에 시장 주도권을 잡게 된 사례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가 러시아에서 '국민 브랜드'로 자리잡은 것은 국가 파산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 기업이 자신들을 버리지 않고 동반자로 남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당장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서둘러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 관점에서는 손해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부도 상태의 러시아에서 1999년 레닌 도서관에 대형 삼성 광고판을 설치하는 등 오히려 더욱 활발한 마케팅을 펼쳐 큰 효과를 거둔 바 있다.

   대우조선 자회사인 루마니아 망갈리아 조선소는 2005년부터 연속 적자를 내며 경영난에 빠져 있지만, 대우조선은 이번 동유럽 금융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선박을 수주해야 하는 주된 사업고객이 동유럽이 아니어서 현지의 금융위기가 영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데다, 동유럽에서 환율이 폭등한 점이 현지 자재구매 등 측면에서 오히려 수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하면서 임금 메리트를 상실한 점도 북ㆍ서유럽으로 빠져나갔던 인력이 다시 현지 조선소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고 있다.

인터넷뉴스팀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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