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모르고 핀 개나리떼 얼어죽을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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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2-2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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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정부의 미봉적 경제정책 수정해야” 한 목소리

“한 겨울에 며칠간 따뜻한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얕은 산 계곡에선 멋모르는 개나리들이 봄이 온 줄 알고 만개하곤 합니다. 그러나 덜 지나간 추위가 갑자기 몰아치면 동사하곤 하지요. 요즘 우리 경제는 마치 이런 상황을 연상케 합니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한 시중은행장은 23일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은 미룬 채 임시 미봉책을 지속해 결과적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가 꼽은 대표적인 사례가 ‘잡 세어링’ 정책과 지지부진한 부실기업 구조조정.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경쟁력이 낮은 부문이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문은 분사, 퇴출 등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급여를 낮추더라도 종업원들을 무조건 끌고 가라는 것은 기업 부실만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IMF 때는 코스피가 300 포인트 대까지 밀리면서 부실기업들이 설 땅이 없어지는 바람에 철저하게 구조조정되는 단계를 밟아 재도약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세계 경제가 절단나는 상황에도 코스피 지수가 여전히 1,000포인트 선을 오르내리는데다, 정부도 부실기업들을 어떻게든 살리려는 정책을 지속하다 보니 금융권도 부실기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보다는 수명 연장에 노력하는 분위기입니다.”

대부분 금융기관들은 무조건적인 기업 지원책을 강조하는 청와대의 방침이 조속히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부-여당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실업률 관리보다 재도약을 위한 과감한 수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W은행 A부행장은 “은행이 돈을 빌려준 기업들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사업이 부실해져 대출자금을 회수하겠다고 통보하면 대부분은 ‘왜 청와대에선 만기를 연장해주라고 하는데 안된다고 하느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기 일쑤”라고 말했다.

K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4.2%로 V자형으로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을 마치 신앙처럼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V자형 반등 예상은 IMF 한 기관의 전망치에 불과하고, 전세계의 대부분 경제기관들은 미국이나 아시아권 국가들이 예외없이 L자형 성장 내지 추가 하락 우려까지 제기하고 있는데 청와대가 너무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들까지 지속적으로 끌고가다가는 결국 금융권의 전체 부실로 이어져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시작된 동유럽의 금융위기가 쓰나미처럼 서유럽, 미주에 이어 아시아권까지 파급될 것이 확실한데다 경제위기가 최소한 수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대수술을 서둘러야 한다고 금융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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