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국가의 부도 위기설이 퍼지면서 세계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주택시장의 붕괴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난주 초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S&P가 동유럽 금융시장의 위기를 경고하자 유럽 증시는 급락했다. 한 주 동안 영국 FTSE100지수가 7.2% 추락했고 프랑스 CAC40지수와 독일 DAX지수도 각각 8.3%, 9% 내렸다. 뉴욕증시 다우지수의 주간 하락률도 지난해 10월 이후 최대폭인 6.2%에 달했다.
세계 증시가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위기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유럽의 위기가 제2의 금융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동유럽 국가들이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하게 되면 이 지역에 투자했던 서구 금융권과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 거대한 신흥시장을 통째로 잃게 되는 것도 시장 확대에 고전하고 있는 기업들에겐 악재 중의 악재다.
하지만 동유럽 국가들의 디폴트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외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일부에서는 주택시장마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동유럽 국가의 국채에 대한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치솟고 있다.
동유럽 부도 위기의 한 가운데에 있는 폴란드의 경우 즐로티화가 스위스 프랑에 대해 지난해 4분기 이래 40% 폭락했다. 폴란드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의 70%가 스위스 프랑 중심의 해외 통화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폴란드판 모기지 사태가 우려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 지적했다.
상황은 악화되고 있지만 위기의 탈출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라트비아와 헝가리, 우크라이나는 그나마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지원이 절실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IMF의 재원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것.
FT는 IMF 전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IMF가 동유럽 국가들을 지원할 재원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사이먼 존슨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동유럽 위기는 IMF의 재원 부족에 따른 결과"라며 "IMF가 재원 고갈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동유럽에 대한 지원 규모는 소규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IMF는 지난해 헝가리에 대한 251억 달러 규모의 지원 계획 가운데 157억 달러를 제공했지만 재원 규모는 급속히 줄고 있다.
유럽위원회(EC) 역시 헝가리와 라트비아 등에 대한 250억 유로의 지원금 가운데 이미 100억 유로를 소진해 유럽 각국의 추가 지원이 절실한 상태다. 이에 따라 지난주 열린 유럽정상회의에서는 IMF 재원을 2500억 달러에서 5000억 달러로 두 배 늘리자는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구체성이 결여돼 오는 4월 예정된 선진 20개국(G20) 회의에서의 추가 논의를 두고 봐야 한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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