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금융시장 불안이 극에 달하면서 부동자금이 500조원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부분의 금융상품 수익률이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윳돈을 굴려 자산을 불려야 하는 투자자도 적절한 재테크 전략을 제시해 돈을 끌여들여야 하는 금융기관도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일선에서 투자자들을 상대하는 PB들은 제대로 된 투자 상담을 하지 못해 놀고 먹으면서 월급을 받고 있다며 자조 섞인 하소연을 할 정도다.
◆ "투자 권유하기 겁난다" = 최근 은행 영업점의 PB 창구나 VIP룸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 하루 평균 상담 고객수가 3~4개월 동안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국민은행 서린동 지점 VIP룸에서 투자 상담을 하고 있는 한 PB는 "주식을 시작으로 펀드, 예금, 보험 등 대부분의 금융상품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큰 폭의 손실을 입은 고객이 늘고 있다"며 "SK네트웍스에 다니는 한 고객은 6개월새 4억원을 잃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투자 상담 건수도 줄어들어 하루 평균 6명 가량의 고객을 받고 있다"며 "100만원을 들고 찾아와 3시간 반 동안 상담을 하는 고객도 있지만 결국 투자하지 못하고 돌아갈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하소연했다.
신한은행 중앙지점의 한 PB는 "투자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지만 최근 투자자들은 리스크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젓는다"며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국공채의 경우 아예 데이터베이스(DB)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물 자체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투자 전략이 극도로 보수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은행 일선 영업점의 PB팀장은 "낮은 예금금리, 주가 하락, 반토막 펀드 등으로 투자처가 실종돼 고객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며 "하루에 고객이 한 명도 찾아오지 않는 날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고객이 찾아와도 막상 마주 앉으면 어떤 상품을 권유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애써 투자하기로 결정한 고객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까지 있다"고 덧붙였다.
◆ 상품별 투자상담 내용 = 많이 알려진 금융상품들의 향후 전망에 대해 묻자 대부분의 PB들은 고개를 저으며 추천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예금상품의 경우 정부가 기준금리를 2%로 낮추면서 예금금리도 3%대에 머물고 있어 투자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 하지만 가장 안정적인 자산이기 때문에 전체 투자금의 10~30% 가량을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주식과 펀드에 대한 투자도 만류했다. 주식의 경우 리스크가 워낙 큰데다 최근 시장이 횡보를 거듭하고 있어 투자를 권하기가 어렵고 펀드도 주가 하락의 영향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묶인 자산'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MMF는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유지해 온 탓에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상품 만기가 워낙 짧아 은행 PB 입장에서는 권유하기가 쉽지 않은 상품이다.
게다가 3개월 전까지만 해도 5%대를 기록했던 수익률이 2~3%대로 하면서 인기도 차츰 시들고 있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역마진을 우려해 MMF로의 신규 자금 유입을 억제하는 곳까지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의 경우 건설사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어 단기간 내에 정상 궤도로 진입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독신가구를 상대로 임대사업을 할 수 있는 오피스텔이나 소형 아파트 등 수익형 부동산에 눈길을 주는 투자자들이 일부 있다는 게 PB들의 전언이다.
금은 안정성이 뛰어나고 최근 시세가 상한가를 치고 있지만 지난해부터 금값이 워낙 많이 뛰어 고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며 추천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외환 실물 거래 및 마진 거래에 대해서는 회수 금액이 가장 많지만 리스크가 크고 특히 동유럽 경제위기로 외환시장이 극도로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에 안전성을 추구하는 투자자에게는 적절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이재호 김유경 이미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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