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상업은행에 대한 국유화를 강력히 부인해 온 미국 정부가 최근 미 최대 금융회사인 씨티그룹의 보통주를 최대 36%까지 매입하기로 했다. 미 정부가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의 최대주주가 됨으로써 씨티그룹을 사실상 국유화한 것이다.
이렇게 미 정부가 ‘국유화’라는 최후 수단을 택한 것은 씨티그룹의 부실이 급속히 늘어나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10년 전 ‘금융 백화점’을 표방하던 씨티그룹이 세번씩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하지만 씨티그룹의 방만한 경영과 투기적 행각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각국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아왔다. 선진금융기관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무색할 만큼 씨티그룹은 세계 곳곳에서 투기 행위를 벌이며 위험수위를 높여 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05년 씨티그룹은 영국 금융감독청으로부터 변칙 채권거래로 부당이익을 올려 유럽 채권 시장을 교란했다는 혐의로 1390만 파운드의 벌금형을 받았다. 2004년 일본 지점의 프라이빗뱅킹 사업부는 주가조작에 사용된 자금을 대출한 것이 적발돼 영업중지 명령까지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씨티그룹의 투기적 행태는 금융기관의 부실경영에 재갈을 물려줄 규제기관이나 시스템이 전무했기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1999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한 글래스-스티걸법이 철폐됨으로써 씨티그룹은 은행, 증권, 보험업무에 대한 원 스톱 서비스를 지향하며 탄생했다. 그러나 무차별적 금융규제 완화로 인해 리스크가 큰 투자부문에 거침없이 뛰어 든 결과 현재의 부실사태를 빚어낸 것이다.
이에 국제사회에는 금융기관의 부실을 막기 위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월가에서는 글래스-스티걸법과 같은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고 유럽 주요국 정상들 또한 좀 더 강력한 금융규제기관 설립을 논의 중에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지난 달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통합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시행해 금융기관의 규제 강화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며 '한국판 씨티그룹'을 양산해 내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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