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이 두번 울고 있다. 의료기관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손해보험사 간 부적절한 치료비 청구 관행으로 인해 결국 소비자인 보험 가입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은 사고로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기존 병력을 뜻하는 '기왕증'으로 인한 부적절한 처우로 육체적·물질적인 고통을 동시에 받고 있다.
지난 2004년 자동차 사고를 당한 S 모 씨는 기왕증과 관련된 분쟁 끝에 A보험사에서 1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S 씨는 보험사로부터 6000만원 상당의 기왕증과 과실 부분을 뺀 4000만원 정도만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동안 소송을 진행하느라 생업을 포기한 S 씨는 결국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로 전락한 상태다.
△기왕증 등 건보 몫도 손보사에 청구=자동차 사고의 경우 기왕증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면 해결에 앞서 의료기관은 일반적으로 치료비를 손보사에 일괄적으로 청구한다.
문제는 분쟁이 끝나 기왕증 또는 과실 부분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도 보험 가입자가 제대로 된 처우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 의료기관은 자동차 사고와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면 분쟁 기간 동안 사고로 인한 치료와 기왕증에 따른 치료에 드는 비용을 손보사에 청구하고 있다.
손보사는 의료기관이 청구한 치료비를 지급하고 분쟁이 해결되면 보험 가입자의 보상금에서 기왕증과 과실에 대한 치료비를 삭감해 지급하고 있다.
소비자단체들은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교통사고와 관련이 없는 기왕증에 대한 치료비는 국민건강보험에서 지급해야 하지만 분쟁이 해결되기 전 손보사가 의료기관에 이를 지급해 결과적으로 건보에서 부담해야 할 치료비까지 보험 가입자가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보협회 측은 "기왕증 자체를 확인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일단은 사고 이후 소요된 치료비는 보험사에서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납입한 치료비에 대해 건보에 사후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결국 보험 가입자는 자동차 사고로 인한 고통과 함께 보험사와의 분쟁을 통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모두 겪고 나서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건보도 제도 개선 필요성 인정, 당국은 방관=건보 측도 현행 제도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건보 급여관리실의 지화석 과장은 "현 제도상으로 어쩔 수 없다"면서 건강보험법 상 의료기관에서 먼저 청구를 해야만 지급할 수 있지만 자동차 사고는 손보사 쪽으로 치료비가 청구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 과장은 "전반적으로 손보사와 함께 현재 시스템을 논의해 바람직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험소비자협회의 김미숙 대표는 "기왕증과 관련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보험 가입자들은 소송을 비롯한 분쟁이 몇 년 동안 지속될 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분쟁 기간 동안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일괄적으로 치료비를 청구하게 되고 분쟁이 끝나게 되면 보험사는 기왕증과 과실을 모두 적용해 보험 가입자에 대한 보상을 삭감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문제는 기왕증에 대한 것은 건보에서 부담해야 하지만 일단 치료비가 지급된 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청구할 수 없도록 한 현 제도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기왕증과 관련해 건보가 부담해야 할 몫을 손보사가 지급하게 되고 이는 다시 보험 가입자에게 지급될 보상금을 삭감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험개발원 측은 "건보와 손보사 간 이해 문제가 상충될 수도 있다"면서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의료계는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자동차사고와 관련해서는 명확한 구분이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치료비와 관련해 보다 뚜렷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등 4개 의료단체는 최근 진료비 심사 및 수가 일원화 공청회를 앞두고 발표한 공동 성명을 통해 "한 나라의 의료제도를 운영함에 있어 공적 보험과 사보험이 각각 고유의 영역에서 제 기능을 다하도록 조화를 이루어야 함에도 이를 무시하고 모든 보험을 동일시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손보사가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게 되면서 결국 손보사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화증권의 오영운 연구원은 "기왕증과 관련된 치료비가 손보사에 우선 청구되면서 손보사의 수익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전반적인 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손해보험서비스국의 김철영 특수보험팀 팀장은 "의료기관과 건보 또는 의료기관과 손보사 사이의 문제에 대해 금감원이 나설 수 없다"면서 "기왕증과 관련된 분쟁에서 치료비 청구에 대해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수는 있지만 금감원은 상관이 없다"라고 말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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