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앞둔 산업은행 임원들이 기업들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며 퇴임 후 자신의 거처 마련을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4일 산업은행과 금융사무노조에 따르면 산은 전·현 임원들은 취업을 전제로 기업들에 대가성 대출을 해주는 등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산은에서 퇴임한 김재실 전 이사는 2007년 성신양회 대표이사 자리에 앉으며 산은을 통해 성신양회에 500억원의 대출을 해 줬다. 2006년 성신양회는 매출 4720억원, 적자 390억원을 기록해 경영난에 시달렸었다.
또 김 전 이사가 산은캐피탈 이사장으로 근무하던 2002년(회계년도 기준) 산은캐피탈이 2770억원의 적자를 낸 점도 그가 일자리 확보를 위해 무리한 대출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키웠다.
금융사무노조 고위 관계자는 "당시 성신양회는 대출을 받기 어려워 산은 출신인 김 전 이사를 활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만약 김 전 이사가 대출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성신양회 대표이사 자리에 앉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또 동부그룹에 재정적 지원을 토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일자리를 받아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1년말 현재 동부에 대한 산업은행 여신은 대출 2529억원, 투자 1247억원, 보증 1399억원 등 총 5115억원이었다. 당시 동부 계열사에 대한 제1금융권 여신 1조7364억원에서 산은이 차지하는 비율은 30%에 육박했다.
동부그룹 고위관계자는 "최근 여신 규모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현재도 제1금융권 대출금 가운데 산은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또 산은은 지난 2002년 동부그룹의 비메모리 반도체사업 확장 때 자본금 증자 등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고 2001년에는 동부전자에 협조융자(신디케이트론)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같은 지원을 대가로 한신혁 전 동부그룹 부회장, 백호익 전 동부그룹 부회장, 손건래 전 동부회장, 홍관의 전 동부전자 회장 등 산은출신 인사들이 동부그룹을 장악했었다.
최근 들어서는 1998년~2001년 산은 이사를 역임했던 오규원씨도 퇴임 후 동부 부사장으로 영입됐었고 산은 IT본부장을 끝으로 퇴임한 이희달 전 이사대우도 2007년 동부제강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순화 전 이사는 2005년 3월 11일 동해펄프 관리인으로 취임해 산은의 동해펄프 지분을 무림페이퍼에 매각하는 데 일조했다. 당시 법정관리 기간 중이었던 동해펄프의 지분 매각을 위해 산은이 박 전 이사를 동해펄프 이사로 앉힌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당시 매각 주관사는 산은 M&A실였다.
이 같이 산은 출신 임원들이 대가성 대출을 해가면서까지 일자리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은 고용의 불안전성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산은 임원은 1년 단위 계약이라 고용이 불안해 임원 취임 때부터 구직활동을 벌이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들어 민유성 행장이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쳐내고 있어 고용불안 심리가 확대되고 있다"며 "조직 구성원 중 1980년대 초중반 입사자가 가장 많아 항아리형 구조를 띄고 있어 이런 현상을 가속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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