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조선 후기의 성군으로 알려져 있던 정조의 비밀편지 299통이 세간에 공개되어 조그만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아픔을 간직한 채 왕위를 이어 받았지만, 여러 당파를 골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여 고질적인 당쟁을 피해간 현명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공허한 이론 논쟁위주의 학문을 서민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학문과 한국판 문예중흥을 장려하여 낡은 왕조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수 있도록 인도한 지혜로운 왕으로도 칭송 받아 왔다.
그런데 새로 공개된 비밀편지에 의하면 정조와 대립의 각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노론 벽파의 영수(領袖) 심환지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는 국정을 논하는 어전회의의 발언각본까지 미리 짜맞추었던 사례가 있었던 것이다. 개혁을 추구하다가 수구세력들에게 암살 된 것으로 그려지던 정조의 진취적인 모습이 병들고 노회한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즘적인 군주로 격하되는 듯한 반전이다.
그런데 정조가 그런 정치술을 활용했다고 해서 그를 시대를 앞서간 聖君(성군)에서 노회한 책략가로 일거에 폄하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정조가 원칙만 내세우고 정국타결을 위한 ‘서한정치’의 방법을 쓰지 않았다면 과연 그가 이룩한 탕평과 조선 판 문예부흥의 업적들이 가능했었을까? 한 나라의 리더로서 앞선 시대정신과 더불어 상대를 포용하는 구체적인 방법(how)을 구사한 정조의 현실 감각이야말로 한 나라의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필수자질이 아니었을까?
요즈음 기업사정을 보면 밀어닥친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 변화와 개혁을 소리높이 외치고 있다. ‘생산성을 높여야 된다’ 혹은 ‘원가를 절감해야 한다’며 너도 나도 美辭麗句(미사여구)로 포장된 계획을 발표 하지만 막상 찬찬히 살펴 보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확실치가 않다.
그저 ‘열심히 하겠다’ 하고 외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정부대로 ‘선제적 조치’ 운운하며 새로운 대책을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산업현장에서는 점점 더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중앙은행에서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 공급을 늘려도 실제 기업들의 대출 창구는 꽁꽁 얼어붙어 있고, 고용 유지니 일자리 창출이니 하는 것들도 실제 활용을 하려면 원칙만 있고 실행 매뉴얼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게 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 즉 하우(how)에 대한 철저한 대책이 없이 공약성 발표가 앞서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how)에 대한 보다 진지하고 치밀한 고민이 없이는 잘 되야 허공에 메아리로 끝날 뿐이고, 자칫하면 잘못된 실행에 대해서 더 큰 비용을 지불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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