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권의 싱글 톨아메리카노] '으름장'과 '화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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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3-1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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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라 불리는 한 사내가 있었다. 가구공장에서 일하며 번 푼돈을 고이고이 모아가며 하루하루를 살던 평범한 청년.

그러나 그는 누이가 어렵게 모은 돈을 노름판에서 몽땅 날려버리고 복수를 위해 그쪽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확실하지 않을 때는 돈을 걸지 마라’ ‘눈보다 손이 빨라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읽어야 한다’ 등 도박사들의 금과옥조를 온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인생을 예술로 한번 살아보기 위해’ 청년은 화투판을 떠나지 못한다.

인생무상의 깨달음을 얻은 그의 스승도, 그를 소유하려 했던 한 여자도, 그와 우정을 나눈 동료도, 그 누구도, 마지막 죽음의 판으로 뛰어드는 사내를 막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깨닫게 되는 것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삶이란 '일장춘몽(一場春夢)'에 불과하다는 것.

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영화 ‘타짜’의 얘기다. 도박의 고수들이 판돈을 놓고 벌이는 한 판 승부를 스릴 있게 다루었다.

고스톱 예찬론자들은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참고할 만한 갖가지 교훈이 담겨 있다”고.

‘고’는 승부에 대한 배짱과 도전 정신을 키워주고 ‘스톱’은 욕심 부리지 않고 멈출 때를 제대로 알고 행하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점을 깨우쳐준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 그럴듯한 얘기로 들린다.

도박에 첫 발을 들여놓은 하수들은 당장이라도 싹쓸이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허황된 망상에 빠져든다. 그러나 속고 속이는 도박판에서 순간의 승리는 끝내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한번 눈이 멀어지면 앞뒤 가리지 않고 베팅을 하게 마련이고 결국에는 빈털터리 신세가 되는 게 도박판의 생리가 아닌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사업 역시 이와 비슷하다. 새로운 사업의 시작이나, 인수합병(M&A)시 상대방을 밀고 당기는 전술과 협박이 보통이 아니다. 패를 잘못돌리다 걸리기라도 하면 손가락 절단 정도가 아니다. 회사 전체를 날릴 수도 있다는 '으름장'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오비맥주 인수를 추진해 온 롯데가 인수 금액 때문에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자 '으름장'을 놓고 있다. 차라리 새로 맥주회사를 설립하겠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

맥주 회사를 새로 설립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주류 제조면허를 받아내야하고 브랜드 파워 구축에 걸리는 시간, 맥주 공장을 짓는 시간, 제조 기술 확보 등 만만한 숙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막대한 자금력을 지닌 롯데라면 사실 못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업계는 이 같은 소문에 대해 오비맥주 대주주인 벨기에 AB인베브사에 대한 '엄포'로 해석하고 있다.

롯데 역시 “맥주회사 신설은 사실무근이며 내부에서 계획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전이든 사실이든, 롯데가 제시한 카드는 ‘신규 맥주회사 설립’이다. 이로 인해 AB인베브와 롯데는 치열한 기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AB인베브가 실리를 두둑하게 챙기고 떠날 수 있을지, 아니면 롯데가 원하는 가격에 오비맥주를 인수해 종합주류기업으로서의 꿈을 현실로 만들지, 패를 쥔 양 선수들의 꿍꿍이가 궁금할 뿐이다.

박상권 기자 kwo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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