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업계와 IT(정보기술)업계가 인수ㆍ합병(M&A)을 통한 대규모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이미 지난주 초대형 거래가 잇따라 성사됐다. 미국 제약업체 머크는 경쟁사인 셰링플라우를 41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고 스위스 제약업체 로슈도 미국 바이오제약업체 제넨텍을 468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제약업체 질리드사이언스 역시 바이오제약업체인 CV세라퓨틱스 인수를 목전에 두고 있다.
케빈 엘리히 RBC캐피탈 제약부문 애널리스트는 이들 M&A의 인수자금 중 상당 부분이 회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상당수 제약업체들은 현금흐름이 좋고 자산건전성도 뛰어나다"며 "주가도 훨씬 낮아진 터라 대규모 거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로 얼어붙은 M&A시장에서 제약업계가 이처럼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은 업계가 수년간 쌓아둔 현금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사정은 IT업계도 다르지 않다. 게다가 최근 주가도 크게 떨어지고 있어 향후 제약 및 IT업계의 M&A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마켓워치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기업들은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여파로 현금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무디스에 따르면 수년간 급증세를 보여온 미국 기업들의 배당액은 지난해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했고 자사주 매입 규모도 2007년 8310억 달러에서 3950억 달러로 반토막났다. 현금 지출을 그만큼 줄였다는 애기다.
이런 가운데 제약업체와 IT업체들은 한동안 차입과 지출을 동시에 줄이며 현금 보유량을 크게 늘렸다. S&P에 따르면 S&P500 기업 중 IT업체들이 보유한 현금은 2240억 달러로 전체 6280억 달러의 3분의 1에 달한다. 제약업체들도 IT기업 다음으로 가장 많은 143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제약업계의 M&A는 성장보다는 방어적인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잭 애블린 해리스프라이빗뱅크 투자전략가는 "평상시의 M&A는 기회와 위험에 대한 방어가 균형을 이루는 시점에서 이뤄지지만 최근 M&A는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한 방어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IT업체들이 경기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IT업계의 M&A가 기회 측면에서 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불황기에는 투자자들이 실적에 의존하기 때문에 지난 2주간 기술주로 몰렸던 투자자들이 이제는 실적 호전이 예상되는 금융주로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만큼 기술주 중심의 M&A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도 IT업체들의 경우 막대한 보유 현금을 주주들에 대한 배당보다는 M&A 자금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IT업체들이 조만간 M&A시장에 뛰어들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이들의 전망이다.
피터 카딜로 아발론파트너스 이코노미스트는 "주가가 하락하고 있는 지금이 M&A의 적기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가 회복기에 있고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렉 영 S&P 애널리스트도 "방어든 기회든 최근 이뤄지는 M&A는 경제회복 신호로는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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