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노사가 벌인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 협상이 결국 한 편의 코미디 영화처럼 끝났다.
시나리오를 제공한 것은 정부였다. 정부는 은행원들의 고임금 구조를 비판하며 임금을 깎아 채용을 늘리라는 단순한 주문만 반복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중간 관리직이 기형적으로 많은 항아리형 인력 구조 때문에 당초 계획했던 인원 이상으로 추가 채용에 나서기가 부담스럽다.
추가 인력은 결국 인사 적체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고 향후 퇴직 시점이 되면 막대한 비용 부담이 발생돼 은행권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은행 스스로가 채용 확대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지만 윽박질러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관치금융에 익숙한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정부의 엉성한 시나리오에 금융권 노사는 이기적인 연기로 화답했다.
대졸 신입직원의 초임 삭감안을 놓고 대치하던 금융권 노사는 협상 과정에서 1년 수습기간 동안만 임금을 20% 삭감하기로 합의했다.
임금 삭감을 통해 마련된 재원으로 채용을 10% 늘리겠다는 것이다.
1년 후에도 경기침체 국면이 해소되지 않아 여전히 채용난이 이어질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수습기간이 끝나고 신입직원의 임금이 정상화될 경우 추가 인력을 잔뜩 뽑은 은행들이 떠안게 될 인건비 부담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금융노조는 은행원들이 지나치게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하기보다는 2년 연속 임금 동결에 합의했기 때문에 할 만큼 했다는 태도를 보였다.
임금 동결은 커녕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쫓겨난 실직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경기침체로 사회 전체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권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적 관심이 공분(公憤)으로 바뀌지 않도록 솔선하고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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