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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보험설계사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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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3-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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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동안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얻은 것은 수억원에 달하는 빚과 병 뿐입니다. 남편을 여의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보험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후회속에 살고 있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친구들은 물론 딸과 사위 등 가족들한테까지 몹쓸 짓을 했습니다. 죽고싶은 심정입니다"

10년 넘게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이씨(여, 54)는 겉으로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50대 중반의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얼굴은 상당히 수척했고 그동안 빚쟁이들한테 받은 시달림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건강 악화로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보였다.

1994년 삼성생명 보험설계사로 일하기 시작해 수석 팀장까지 지낸 이씨가 들려준 보험업계의 관행은 충격적이었다.

실적을 채우기 위한 가짜 계약인 이른바 '그려 넣기' 등 불법 보험계약과 일정 수준의 신규 설계사를 채용해야 하는 '증원'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씨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보험설계사들은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않은 채 업무에 투입됐다. 상품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다보니 고객에게 판매한 상품에 대해 설계사와 콜센터 직원의 설명이 틀린 경우도 다반사다.

이는 곧 보험계약에 대한 고객들의 민원으로 이어졌다. 민원은 설계사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다.

삼성생명은 민원에 대한 책임을 설계사에게 떠넘기기 위해 자사 설계사들을 상대로 매년 '회사에 근무하면서 민원이 발생하거나 위배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모든 책임을 설계사가 진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모집인의 잘못은 우선적으로 보험사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규정에 따르면 모집인의 잘못으로 인한 민원에 대해서는 보험사가 우선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이후 구상권 행사 등은 별개 문제"라고 밝혔다.

원금을 돌려달라는 민원의 경우에는 계약자가 납입한 보험료는 회사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설계사가 원금을 모두 물어주는 경우도 많다고 이씨는 말했다.

일례로 보험사 지정 병원에서 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고 이에 대한 불만을 표시, 종신보험 해약을 요구한 고객에 대해 이 씨와 영업소는 가입자 모르게 계약을 유지시켰다. 물론 월 수십만원에 달하는 보험료는 이씨가 납입했다.

이씨는 종신보험의 유지가 안될 경우 영업정지를 받는 것이 두려웠고 영업소 입장에서도 계약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계약이 유지된 사실을 알게 된 고객은 회사에 민원을 제기했고 이씨는 자동이체된 보험료를 물어준 것을 비롯해 계약유지를 위해 600만원을 쏟아부어야 했다.

이씨는 설계사들의 가장 큰 고충은 신계약 할당과 유지라고 말했다. 설계사한테 할당된 신계약건수와 계약 유지를 맞추지 못하면 금전적인 손해는 물론 인간적인 모멸감도 느껴야했다.

그는 "마감 10일을 앞두고는 화장실도 가지 못했습니다. 팀장으로서 신입 보험설계사들의 마감까지 책임져야 했습니다"라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씨가 근무했던 삼성생명 인사동 지점은 보험 상품도 회사에서 지정해준 상품 위주로 판매하도록 강요했다. 설계사가 고객 개인에게 맞는 상품을 권유할 여지도 없었다는 것이다.

무리한 계약 목표와 유지율을 맞추기 위해 이씨는 고객들이 가입한 보험으로 약관대출을 받아 '가짜 계약'을 하기 시작했고 친인척들로부터 수천만원의 빚을 내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씨는 고객들에게 피소돼 지난해 재판에서 집행유예 2년에 사회봉사 12시간을 선고받았다.

삼성생명 측은 가짜 계약이 인정된 보험에 대해서는 보험을 무효화하고 납입금을 돌려주기로 했지만 다시 지급을 할 수 없다며 말을 바꿨다.

이씨와 같은 사례가 한둘이 아닌 상황에서 이씨가 계약시킨 보험에 대해서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삼성생명 측은 답변을 거부했다.

이씨는 "제가 지은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험업계의 관행은 정말 바뀌어야 합니다"라면서 "모집인과 수금을 분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계약 유지는 정말 없어져야 할 악습입니다"라고 하소연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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