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이후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함에 따라 금융회사들이 채권추심을 강화하면서 금융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의 집을 경매에 넘기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고 제2금융권도 가족이나 직장에 채무불이행 사실을 알려 채무자를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하는 등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연체관리 강화는 건전성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무리한 채권추심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거나 관련 법규를 위반한 사례가 있는지 모니터링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 은행 경매 건수 급증
최근 경기침체로 연체율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은행들이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의 담보를 경매에 부치는 건수도 급증하고 있다.
23일 부동산 경매정보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18개 은행들이 올들어 1~3월 경매를 신청한 건수는 총 7천14건으로, 지난해 1~3월 5천979건에 비해 17%나 급증했다.
국민은행의 수도권 경매소송관리센터 경매 건수도 지난해 월 평균 92건에서 올해 1~2월에는 월 110건으로 늘어났다.
경매 건수가 늘어난 것은 채무자의 빚 상환 능력이 떨어진 데다 은행들이 연체 관리를 강화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채무자가 앞으로 빚을 갚을 능력이 있다고 보면 기다리지만, 그럴 여력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채무자의 연체이자 부담 등을 줄여주기 위해 담보 물건 정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통상 은행이 경매를 신청해 첫 경매일자가 잡히기까지 5~6개월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오는 4월부터는 경매 건수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아직 피부로 느낄 정도로 늘어나지는 않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작년 9월에 발생한 만큼 앞으로 경매 건수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매를 실행하는 기준이 예년보다 더 강화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2금융권 채권추심 강화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 등 2금융권은 가혹한 채권추심으로 원성을 사고 있다.
20대인 A씨는 최근 냉장고, 세탁기 등에 압류딱지를 붙인 채 생활하고 있다.
A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남편이 실직하자 서울 성북구의 30평대 아파트를 담보로 저축은행에서 1억 원의 대출을 받아 가게를 열었다가 불황 때문에 가게는 곧 폐업을 하고 말았다. 이전에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 2억 원을 받은 것까지 포함해 총 3억 원의 빚을 지게 된 A씨는 더는 이자를 낼 상황이 못되자 집을 포기했고 이 집은 현재 경매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저축은행에서 찾아와 냉장고, 세탁기 등 집기류에 압류 딱지를 붙이고 갔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집값 하락으로 은행이 대출금을 먼저 회수하면 자신들이 빚을 다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직장인 B씨는 지난 달 한 저축은행에서 연체사실을 직장에 알려 창피를 당했다. 대출을 받은 저축은행 직원이 B씨의 직장으로 전화해 동료 직원에게 "돈을 입금해야 하는데 (B씨는) 은행갈 시간도 없냐"고 따져물은 것이다.
금감원에 접수된 저축은행 채권추심 관련 민원을 보면 채무자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켰냐"며 인신공격을 하거나 새벽 2시40분에 전화로 상환을 독촉하고 하루 밖에 연체가 안 됐는데도 반나절 동안 10건의 상환독촉 문자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는 사례도 있었다.
여신전문금융회사도 지나친 채권추심으로 금감원에 민원이 다수 접수됐다.
B캐피탈사는 올해 8월 연체자의 별거 중인 부인을 찾아가 채무를 변제하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남편의 소재와 연락처를 요구하기도 했다.
◇ 금융당국 "과도한 채권추심 점검강화"
작년에 금감원에 접수된 채권추심 관련 상담건수는 1만207건으로 전년 대비 17.9% 늘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작년 4분기부터 관련 상담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금융권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한 올해 들어서도 상담건수가 크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올해 들어 금융회사의 연체채권을 넘겨 받아 돈을 대신 받아주는 신용정보회사의 무리한 채권추심이 늘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신용정보회사 직원이 불안감을 유발하는 언행으로 어머니와 배우자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거나 회사에 급여 압류를 의뢰해 퇴사위기에 처하게 했다는 내용의 민원이 최근 금감원에 접수되기도 했다.
신용정보회사가 채무자 외 관계자에게 채무불이행 사실을 알리거나 공포심과 불안감을 유발해 사생활과 업무를 심하게 해치는 경우 당국의 제재대상이 된다. 또 올해 8월부터는 빚을 받아내기 위해 전화 또는 이메일 등을 통해 채무자를 괴롭히거나 폭행, 협박 등을 금지하는 공정채권추심법도 발효된다.
금감원측은 "과도한 채권추심으로 인한 금융 소비자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금융회사의 채권추심 관련 법규 위반 여부에 대한 점검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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