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를 주름 잡아온 글로벌 기업들이 유례 없는 경기침체로 고전하고 있다. 불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씀씀이를 줄이며 경기가 호전되기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경험이 없는 데다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일발 상황이 예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동유럽과 아프리카, 남미와 같은 신흥시장의 기업들이 그렇다. 변동성이 큰 신흥시장에서는 호황은 한껏 누리되 불황이라고 뒤걸음칠 수는 없다. 이들은 불황을 기회로 보고 오히려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이처럼 위기에서 기회를 찾는 신흥시장 기업들의 경영전략이 선진국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불황기에 두드러지는 신흥시장 기업들의 경영전략 몇가지를 소개했다.
◇'프리미엄' 상품으로 소비자 지갑을 열어라=불황이 깊어지면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기 마련이다. 때문에 일반 기업들은 세제 포장에 '초절약형'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소비자를 유혹한다. 양을 늘리거나 가격을 낮춰 마진을 줄이는 게 하나도 못 파는 것보다 낫다는 계산에서다.
반면 신흥시장 기업들은 '프리미엄' 상품을 내세우는 정반대의 전략을 취한다. 프리미엄 상품이라고 해서 일반 상품에 비해 가격이 크게 비싼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상품을 구입하며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게 된다. 이른바 '선대칭'전략이다.
'일반', '강력', '초강력'으로 구분된 건전지를 판매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업들은 보통 이를 동일한 개수로 묶어 가격을 차별화해 판매한다. 프리미엄 상품일 수록 마진도 높다.
하지만 중동부 유럽의 기업들은 상품을 품질별로 구분하되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다만 품질이 좋을 수록 건전지 개수를 조금씩 줄인다. 이렇게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이익이 줄지만 소비자들은 보다 저렴하게 프리미엄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판단에 지갑을 열게 된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라=경기침체가 심화하자 기업들은 잇달아 광고 예산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신흥시장 기업들은 같은 시기에 오히려 소비자들과의 접촉 기회를 늘리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홍보인력을 조금 늘리고 생산량을 유지하면 그만이다.
남미의 주요 소비재 제조업체들은 불황이 닥치면 유통업체로 직원들을 파견한다. 이들은 자사의 상품이 소비자들의 눈에 잘 띌수 있도록 진열돼 있는지 확인하고 보다 나은 위치에 상품이 진열될 수 있는지를 업체 관계자와 협의한다.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TV광고를 통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황기에는 기존 고객을 뺏기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상품을 내놓기보다는 시장에 이미 알려진 상품의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고객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하면 소비자들의 충성도가 높아져 경기가 호전되면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소비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찾아라=마켓팅 및 가격 책정 전략을 새로 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은 더 이상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경우 기업들은 보통 첨단 기술이 접목된 전화기와 다양한 서비스 상품을 한 데 묶어 장기 약정을 걸어 판매한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MTN사우스아프리카와 인도의 바르티에어텔과 같은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선택폭을 최대한 늘리고 약정기간도 정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경제력에 맞는 상품을 고를 수 있고 사용의무 기간에 따른 부담이 없기 때문에 불황기에도 지갑을 열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신문은 매출이나 경상이익 등 단기적인 실적에 얽매이기보다는 시장 상황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했다. 물가와 실업률, 환율, 국내총생산(GDP) 등 거시경제지표를 예의주시하고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마련한 시나리오에 따라 경영전략을 펼쳐야 경기변동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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