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중국의 현장 경제 일각을 보여주는 중국 칭다오국제공항 진입도로 일대의 전경. 주중에도 체증을 빚던 공항진입로는 주말인데도 을씬년스런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칭다오시(중국)=특별취재팀] |
전자부품업체를 운영하는 L씨는 “중국 인건비는 2003년께부터 매년 15~20% 상승 행진을 거듭해왔다”며 “여기에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신노동법의 경우 ‘4대보험 의무 가입’을 명시한 이후 실질 인건비가 20% 이상 올라가면서 비숙련공 임금이 30달러 선에 달해 더 이상 인건비 경쟁력이 사라지게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기업들의 경우 한 기업체에서 형식적으로 두 세명만 보험에 가입하는 등 흉내내기만 해도 넘어가지만, 한국을 비롯한 외자기업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점검하기 때문에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라고 덧붙였다.
운영자금이 바닥 나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또 다른 기업인(48)은 청산절차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업이 청산할 때 그동안 받은 감면혜택을 모두 토해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기업파산법은 청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체불된 각종 사회보험금, 지방정부와 관련된 준조세 성격의 비용 등을 처리해야만 청산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당장 꾸려나갈 운영자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입장에서 이 같은 조건을 어떻게 충족시키겠습니까?”
이미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기업들은 중국기업과의 ‘보이지 않는 차별’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더욱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영복장 김영모 사장은 올들어 황당한 일을 당했다. 구정 연휴를 마치고 나니 기계들이 오간 데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는 “총 6,000만원 규모에 해당하는 기계 26대가 감쪽 같이 없어졌다”며 “현장을 확인하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고 말했다.
도난된 기계들은 공장 가동에 필수적인 기계들이었다. 관할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형사들은 수사하는 흉내만 낼 뿐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이 여기 저기 탐문해 범인이 거의 확실시 되는 단서를 제공했음에도 경찰 측의 반응은 묵묵부답이었다.
김 사장은 “기계를 찾지 못하면 공장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 영사관이라도 나서서 강하게 수사에 나서줄 것을 요청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완구업체를 운영하는 W씨(39)는 “중국 관리들에게 글로벌 불황시대를 맞아 규제도 낮춰주고 행정적 지원도 늘려달라고 하소연하면 ‘불황은 불황이고 법은 법’이라며 응대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게 최근 중국 일선 관청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 투자매뉴얼 "원스톱 지원시스템 시급하다"
한국 기업들의 무단 폐업 악순환을 막을 현실적인 장치는 없을까?
코트라 칭다오무역관 관계자는 “현재는 한국기업들의 무단 폐업 및 야반도주 사태가 다소 진정된 상태"라며 "칭다이지역의 한국기업 가운데 피혁가공, 봉제 등 수가공 업종에 집중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글로벌 불황이 지속된다면 또 다시 집단 폐업 사태가 줄을 이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지 기업들은 차제에 우리 정부와 현지 주재 영사관 차원에서 처음 중국사업을 시작하는 투자자들에 대한 ‘투자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경영과정상 애로 사항을 협의하고, 청산하는 경우를 위한 원스톱 지원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기업인은 “한국에서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오는 기업들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브로커들을 소개받거나, 미분양 공단 땅을 편법으로 사는 등 모두 제각각 전략으로 접근하다 보니 중도에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기업을 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의 마인드도 엉망인 경우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무단철수나 야반도주의 경우 불가피한 상황이 있겠지만, 아예 본인 재산을 빼돌려놓고 도주하기로 마음 먹는 기업인들이 있고, 이 때문에 전체 한국 기업인들의 이미지까지 먹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진출에서부터 철수까지 치밀하게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을 경우 일부 기업인들의 ‘도덕적 해이’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현재와 같은 소극적 지원 체제로 일관할 경우 무분별한 진출에다 사업 실패, 무단철수라는 악순환이 거듭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칭다오시(중국)=특별취재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