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권에서 고액연봉을 받고 있는 핵심 인재들이 월가를 이탈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오바마 행정부가 최근 미 금융권의 성과급에 대한 규제와 감시를 강화하자 월가 스타 뱅커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이어지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가 최근 미국의 소규모 투자자문사 10곳 이상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금융위기 조짐이 나타난 지난 2007년 여름 이후 수백명의 인력이 월가를 떠났다.
전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소규모 투자회사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이동한 이들은 자신의 고객들과 금융 노하우를 고스란히 갖고 이직해 전 직장과 갈등도 빚고 있다.
엑소더스 행렬에 동참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등 초대형 금융기관 출신으로 주로 미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외국계 은행이나 작은 규모의 신생 투자자문사 등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NYT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 일으키며 시장을 지배했던 이들이 대거 월가를 떠나게 된 것은 오히려 폭넓은 구조조정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매튜 리처드슨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는 "고위험상품에 투자하던 메이저 은행의 직원들이 작은 규모의 금융기관으로 이직하면 더이상 전체 금융시장을 위협할 만한 구조적 위험요소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며 "이는 동시에 금융시스템의 혁신이 소규모 투자기관으로 확산되는 효과로 이어져 결국 좋은 결과를 끌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 뱅커들의 이동 경로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손실이 상대적으로 적은 유럽 투자은행(IB)으로의 이적이 두드러진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난해 9월 이후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메릴린치는 고위급 경력인사 채용이 단 한건도 없었던 반면 유럽의 도이치방크와 로스차일드는 리먼브러더스와 씨티그룹, BoA 등으로부터 각각 12명, 9명의 고위급 인사를 영입했다.
영국의 투자자문사인 렉시콘의 앤드루 시벌드 전무는 "금융위기를 겪은 요즘 IB의 고위급 임원들이 자신들의 미래와 연봉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좀 더 규모가 작고 안정적인 금융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과거 과열 양상을 빚은 업계의 ‘인재 모시기 전쟁’이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월가의 외부인사 영입 열풍은 지난 1998년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내놓은 ‘인재전쟁(War for Talent)’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촉발됐다.
보고서에서 맥킨지는 기업 내 소수 인재가 직원 수백명의 역할을 해 기업의 역량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는 만큼 가능한 모든 변수를 분석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우수한 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인재 확보를 위한 전쟁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맥킨지의 그럴듯한 주장은 업계간 ‘제살깍기’식의 과도한 인력 영입 경쟁을 촉발했지만 이는 고액 연봉을 받는 이들이 자신의 기업 내 위상과 연봉을 높이기 위한 술책에 불과했다는 것이 FT의 지적이다.
FT는 기업의 효율적인 조직문화와 같은 기본적인 환경을 무시한 채 스타 임원 한 사람을 기업 수익의 유일한 창출원인 것처럼 추앙한 것이 무리한 투자로 이어져 현재의 금융위기를 촉발했다고 진단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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