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앞바다 메우는 '백수선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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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4-1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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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백수 신세입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해상 수송량이 급감하면서 부산외항 앞바다에 운항을 멈추고 바다 위를 떠도는 이른바 ‘백수’ 선박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세계 주요 항로의 물동량이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 것에 따른 현상이다.

최근 경기바닥론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인체의 혈액처럼 수출물량을 실어나르는 해운업계는 아직도 냉랭한 한겨울이다.

‘멈춰선 배’들은 이제 쉴 곳을 찾는 것조차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해상 수송량이 급감하며 운항을 멈추는 선박들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어 정박료가 저렴하고 입지가 좋은 부두들은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갈 곳 잃은 배들은 경남 거제도 지세포·능포 등 항계 밖 인근 바다를 떠돌고 있다. 대규모 계선 사태에 대해서는 누구도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산업계 전반에 휘몰아친 경기침체가 해운 물동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해운업계의 ‘고객’인 제조업이 되살아나고, 소비심리가 회복되지 않는 한 업계 스스로 해결할 방법은 없다는게 해운업계의 설명이다.

부산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 접안시설마다 정박한 선박들 때문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사진설명) 부산외항에 무단 정박중인 '백수선박'들. 갈 곳 잃은 배들은
  부산외항은 물론 경남 거제도 지세포·능포 등 항계 밖 인근 바다에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홍정수 기자 jshong204@
승용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 부산항으로 가는 길목인 거제도 해역에 이르자 부산외항에 정박하지 못한 선박들이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자갈치항에는 외항에 정박한 선박의 선원들과 식량 등 부식을 공급하는 통선이 100여척이 운영됐지만 최근 경기침체로 일감이 급감해 현재 20여척만이 운영중이다.

“일꺼리가 없어 죽을 맛입니더. 기름값은 올랐지예. 돈은 올리자 카면 딴 배에 뺏기고 하이 돈도 못 올리지. 이래 저래 아이고마 그만할람니더. 더한들 내입만 아프지 뭐.”

부산 자갈치항에서 통선을 20년째 운영하고 있다는 최 모 선장은 “경기가 좋을 때는 배들이 내항에서 화물을 내리고 다시 출항하는 등 배가 쉴 새 없이 내-외항을 들락거렸다”며 “덕택에 부식을 운반하고 선원들 상륙과 복귀로 정신없이 바빴는데 요즘은 외항에 닻을 내리면 선원들만 내리고 2~3개월은 그냥 바다에 떠있기 일쑤”라고 말했다.

‘물동량 급감·운임료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신음하고 있는 컨테이너선은 2011년 이후 시황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특히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각 부문에 걸쳐 신조 선박들의 인도 작업이 대량 예정돼 있어 향후 ‘멈춰선 배’들은 더욱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순조로운 상황 개선이 어려운 것은 물론 이제부터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철광석과 연료탄, 곡물 등을 실어나르는 벌크선은 세계 경기침체와 전력소비량 감소로 당분간 이전과 같은 ‘초호황’의 재현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진설명) '일거리 좀 주세요!' 감천항에는 빈 컨테이너선과 화물선, 통선
  들이 뒤엉켜 새 선박이 들어갈 틈조차 없다. 접안료도 부담스런 선박들은
  인근 해역으로 내몰리고 있다. 홍정수 기자 jshong204@
스크랩(해체)량과 발주 취소량을 감안한다고 해도 향후 적지 않은 선박이 시장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물동량은 점점 줄어드는데 인도될 선박은 차고 넘치는 셈. 이들 선박이 투입될 경우, 일부 노후선박들은 스크랩 신세, 중소형 선박들은 깡통선박 신세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처럼 계선 선박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됨에도 불구, 이들 선박에 대한 현황 파악과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각 항만 정박지에 멈춰 있는 선박들의 경우, 정박지를 관할하는 지역 항만청 등에 미리 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상태지만 항계 밖을 떠돌고 있는 선박들은 관리는 커녕 통계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중소형 선박의 경우, 육안으로 인식될 정도로 해안가 가까이에 몰려 있어 지역 어민들로부터 원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장승포에 사는 한 어민은 “어항지역에 화물선들이 몰려 있으니 우리에게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애써 설치해 둔 그물을 망가뜨리고 있는데, 피해 보상을 받을 곳도 없다. 국가에서 뭔가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당초 국토해양부는 부산 외항 정박지에 선박들이 몰려 ‘포화 상태’에 다다르자 항계 밖에 ‘잠정 대기 수역’을 설정, 선박들을 머물게 하는 방안을 고려한 바 있다. 부산과 마산, 광양 등 일부 지방해양항만청은 이에 대한 검토에 나서기도 했다.

부산지방해양항만청 관계자는 항계 밖 선박에 관해 “권한이 없으며 현황 파악도 어렵다"며 "안전사고 등에 대비해 해경에서 단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조슬기나 기자 (아주경제·EBN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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