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Monroe, oil on aluminum, 120x240cm, 2009 | ||
아라리오 갤러리 |
“이건 왜곡이야” 옆으로 길게 늘어진 먼로의 초상화를 본 관객의 탄성 소리가 들려올 법하다. 내달 17일까지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극사실주의 작가 강형구의 개인전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철저히 왜곡돼 있다. 머리카락 한 올, 속눈썹 하나까지 가느다란 털로 붙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됐지만 작가는 이것도 ‘있는 그대로’는 아니라고 말한다. “압축 변형을 통한 강조와 왜곡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교감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그 이유다.
시공간 초월… 가공의 미학
강형구 작가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200여점이 넘는 인물 페인팅을 완성했다. 아트페어와 경매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지만 초상화로써 인기를 끌 수 있는 그 흔한 ‘웃는’ 얼굴을 표현한 적은 없다.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 표면에는 오랜 감정의 습관인 주름이 세심하게 드러나 있다. 나무의 나이테에 비유되는 사람의 주름 하나하나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가공하는 동시에 상상의 여지를 남겨둘 수 있기 때문이다.
캔버스에서 그리던 그림이 익숙한 작가는 2년 전부터 알루미늄 판 위에서 인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알루미늄 판은 빛의 방향에 따라 표면의 모습이 변화돼 다양한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은 표면을 거칠게 긁어내면서 표현해 은빛으로 또는 흰색을 띄도록 가공됐다.
책의 한 표지를 장식하는 반 고흐의 초상화는 시간과 공간의 엄격한 범주를 탈피했다. 한 쪽 귀가 잘린 채 붕대를 감고 정면을 응시하는 고흐의 눈빛은 지금 막 눈을 뜬 것 같이 생생하다. 애초에 사진으로도 남겨져 있지 않은 고흐의 이 같은 모습은 오히려 더 실감나게 표현됐다. 작가는 말한다. “어쩌면 나는 리얼리즘보다는 허구를 추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팽창된 감각의 세포
28일까지 갤러리 나우에서 진행되는 박시찬과 장명근의 사진전은 각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공간’을 촬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두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박시찬은 피사체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정면의 중앙시점에서 보여 지는 형태 그대로를 담았다. 평면의 사물이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느낌은 단조로운 동시에 음울하다. 넓게 펼쳐진 구조물이 오히려 은폐된 듯 보여 진다.
장명근이 표현한 도심 속의 세계는 빛과 초점의 농도를 통해 강조되고 변형됐다. ‘#30’에서의 건물 한 중간은 집중적으로 드러나 있고 그 주변은 푸른 넝쿨로 둘러싸여 있다. 반복되는 같은 크기의 작은 계단들은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심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건물들은 작가가 변형시킨 대로 또 다른 느낌을 만들어냈다.
바라보고 느끼는 주체와 그 대상은 강조와 왜곡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분히 상황적인 존재로 자리한다. 돋보기로 확대되고 빛에 의해 반짝이면서 시각의 범주를 해체시킨다.
정진희 기자 snowwa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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