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자동차업계가 경기후퇴의 직격탄을 맞고 초토화됐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는 파산 위기에 몰렸고 일본 도요타자동차도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이들 완성차업체에 납품하던 부품업체들의 현실은 더 암울하다. 세계적인 자동차컨설팅업체인 CSM월드와이드는 내년까지 북미지역 부품업체 가운데 12~25%가 파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완성차업체의 주문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부품업체들의 위기는 불황 때마다 제기됐고 해법도 이미 다 나와 있다. 호황과 불황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수익원을 다각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가 주관한 컨퍼런스에 참여한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사례를 통해 사업 다각화를 위한 실천 방안을 소개했다.
신문은 먼저 온타리오주 윈저시에 있는 앤초댄리의 사례를 들어 구체적인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회사는 미국 자동차산업 메카인 디트로이트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부품업체로 위치상 미 자동차산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때문에 로이 베르스트라트 앤초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에 집중했다.
그는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 자동차 '빅3'의 주문량이 감소하기 시작한 5년 전부터 새로운 분야로 진출을 꾀했다. 물론 초기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베르스트라트 CEO는 "계획을 세우는 것은 간단했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누구를 찾아가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 지 조차 알지 못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처음의 두루뭉술한 계획을 전면 폐기하고 회사의 엔지니어링부, 판매부, 회계부 등 전사적 차원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과 목표를 잡았고 그에 따른 구체적 성과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했다.
또 새로운 설비를 들이기보다는 기존 자동화 시스템과 인력을 적극 활용해 비용을 줄였다.
그 결과 앤초는 불황 속에서도 연평균 매출 1억2900만 달러를 기록할 수 있었고 독일과 중국에 800여명의 직원을 둔 글로벌 업체로 성장했다.
그 사이 자동차부품의 매출 비중은 85%에서 70%로 줄었다. 자동차 부품뿐 아니라 원자력발전소에 쓰이는 교체튜브, 풍력엔진, 건설과 의료기기 생산에 사용되는 용접철강 등 다양한 부품을 생산, 공급한 결과다.
엔초와 이웃하고 있는 얼티메이트매뉴팩쳐드시스템스(UMS)는 친환경에너지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이 역시 부품업체로서 다져온 자동화 시스템을 새로운 사업 부문에 적극 활용한 경우다.
연평균 매출 2000만 달러에 110명의 직원을 둔 UMS는 주로 자동차 부문의 자동화 설비 공급에 주력하던 업체였다. 그러나 불황의 파고를 피할 수 없었던 UMS는 태양열 및 풍력 에너지 부문을 새로운 시장으로 판단, 친환경 에너지산업 부문에 필요한 자동화 설비를 공급하는 데 힘쓰고 있다.
지노 롱고 UMS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자동차 조립이 전문이던 4명의 고위직 담당자들을 자동화 엔지니어링 전문가들로 교체하는 등 적극적인 인사 개편을 단행했다.
그는 "UMS가 보유한 자동화 기술력은 친환경에너지의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데 십분 활용될 수 있다"며 "개혁 의지를 가진 훌륭한 인력만 있다면 중소기업도 불황 속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고 승산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신문은 아울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는 자동차 부품업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생산부문의 각 공정별 작업량을 조정해 중간 재고를 최소화하고 비용을 줄이는 이른바 '저스트인타임(JIT)' 방식과 플라스틱 몰딩주입 시스템은 항공기 제조업계에서 충분히 벤치마킹할 수 있는 부문이다.
일례로 밸리언트머신앤툴(VMT)은 현재 보잉사에 플라스틱 몰딩주입기와 항공기 제조용 툴을 공급하고 있으며 건설 및 임업용 자동화시스템도 제공하고 있다. 주로 포드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던 VMT는 최근 유럽의 대체에너지 설비 공급업체들과도 활발하게 제휴를 맺고 있다. 노동력이 덜 드는 북미지역의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에너지 관련 제품 출하 및 유통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티 솔츠 VMT COO는 "포드와의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업 다각화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며 "이를 위해 VMT는 자동차 자동조립 노하우를 군용 차량 생산라인에 접목시키는 노력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존 고객도 유지하기 힘든 마당에 새로운 부문에 진출하는 데 따른 리스크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자금이 부족할 뿐더러 수요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메리 가글리야디 비즈니스개발은행 컨설턴트는 "부품업계가 자동차 부품만 생산하는 데 주력한다면 더 이상 업계에서 이익을 내기는 힘들다"면서도 "충분한 현금과 새로운 기술력이 없다면 새로운 시장 진출에 성공하기는 힘들 것"이고 지적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