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가 무너지고 있다. 모기업으로부터 살을 에는 고통의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러니 어떤 말인들 더 해 무엇 하랴. 이미 탯줄은 끊어진 뒤인걸.
우려하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만 GM대우는 약 9000억원의 손실을 냈다. 당연히 올해도 대규모 적자가 예상된다. 수출이 전체의 9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해외로 나가는 물량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선물환계약 손실만 해도 올해 최대 2조원이 예상된다. 여기에 5~6월에 돌아올 선물환계약 8조9000억원의 만기 연장을 둘러싸고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의 협상도 난항을 겪고 있다.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이다.
이럴 때 미국 본사가 적극 나서서 도움을 준다면 GM대우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 되겠지만, 이마저도 요원한 이야기다. GM조차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상태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굿 지엠’이라며 GM대우를 치켜세웠던 본사가 더 이상 지원할 방법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겠는가?
이 문제 때문에 산은과 한국 정부가 GM대우를 선뜻 지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칫 공적자금을 투입했다가 헤어 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투입된 공적자금은 다시 국민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4.29재보선과 엮였던 GM대우 문제는 정치권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여야 할 것 없이 반드시 살리겠다며 공약(公約)을 내세웠던 것이다.
선거날인 29일 오전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GM대우 부평 공장 앞에서 “미국 GM 본사가 어떻게 되든 부평의 GM대우를 살리겠다”며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80여명의 의원들은 물론 사무처 당직자까지 대거 동원했다. 박 대표는 산업은행이 GM대우의 지분을 사들여 벌도의 법인을 만들겠다는 방안까지 내놨다.
민주당도 표심 앞에서는 무력했다. 한나라당이나 매일반이다. 한나라당의 ‘시나리오’를 비웃기라도 하듯 GM대우의 신기술 개발 및 유동성 지원을 위해 6500억원을 추경예산에 포함시키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투표권을 가진 GM대우 노동자는 약 1만명 가량이다. 전체로 봐서는 그렇게 중요한 투표군이 아니다. 이들 노동자를 둘러싼 주변인이 합세하기 때문에 정치권이 애걸복걸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 정당의 말 속에는 당장의 이익을 위해 선심 쓰듯 공약을 남발해도 상관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담겨있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머무는 경계선을 수시로 넘나드는 자신감의 원천이다.
당연히 충분한 검토도 없이 나온 공약(空約)들이니 선거가 끝나면 유야무야 될 것이 분명하다. GM 본사의 지원도 없고, 뚜렷한 회생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국민 세금을 투입하겠다고 하는 생각은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한 미봉책에 다름 아니다.
구조조정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 자금 지원을 어떻게 쉽게 이야기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생존 가능성을 판단하는 게 지원의 첫 걸음인데도 말이다.
선거는 끝났고, 노동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청운의 꿈을 이뤘다. 그런데 뒤가 찜찜하다. 예전 쌍용차 사태 때도 해고는 없다고 정치인들이 공약했다. 근데 1700여명이 길거리로 나 앉았다고 한다. 잠깐, 투표 다시 하면 안 될까?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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