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셨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재임 기간 중에 “(검은)돈 한 푼 안 받겠다”면서 1년에 한번 있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식사도 청와대 근처 삼계탕 집에서 간소하게 치르셨습니다.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저는 그러한 대통령의 모습에서 역대 대통령들에게 없던 서민적인 친근함에 매료됐습니다.
대통령의 재임 중에 증폭된 진보와 보수 간 갈등과 후유증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퇴임하신 뒤엔 ‘그래도 최소한 검은 돈 때문에 감옥에 가는 전 대통령 모습은 안 봐도 되겠다’는 마음에서 위안을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61년 대한민국 헌정사에 또 하나의 오점이 될 전직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것은 13년 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입니다.
역대 어느 정권에 비해 도덕성과 청렴성 만큼은 자부한다던 당신께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 피의자 신분으로 이날 대검찰청에 출두한 것입니다.
당신은 재임기간 중 개혁정치로 높은 지지를 받던 태국의 탁신 총리가 부패로 몰락한 것을 보지 못하셨는지요.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은 또 어떻습니까. 그는 페루 출생의 일본계 이민 2세로 1990년 라틴아메리카 사상 동양계로는 최초로 페루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취임 후 경제를 재건하고 정치적 안정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비리로 집권 10년만에 물러나 일본으로 도주했다가 2005년 칠레에서 체포돼 영어의 몸이 되는 모습도 똑똑히 보셨을 것입니다.
대만 천수이볜 총통도 마찬가지였지요. 퇴임 후 임기 중 부패 스캔들로 검찰 수사를 받고, 권력형 게이트로 가족과 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철창신세를 지게 된 점은 지금 당신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습니다.
한때 국민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던 통수권자들이 부패로 몰락했던 그들. 당신이 이들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오욕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물론 과거 대통령들의 천문학적 비리 규모에 비춰본다면 당신의 ‘600만 달러’ 혐의는 그야말로 ‘생계형’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민도는 이제 그 생계형 비리마저 용납하지 못하는 수준에 올라선 것 같습니다.
법리 공방을 떠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당신의 해명 가운데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특권과 반칙 없이’ 성실하게 조사를 받으면서 모든 사실을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당신이 비리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는 마지막 전직 대통령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끝으로 더 이상 전직 대통령의 비리가 반복되는 후진적 역사 행태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평양 너머에서 교훈을 얻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대통령’ 평가를 받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추악한 스캔들 속에서 퇴임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금 모습은 어떻습니까. 직접 의자를 만들어 수익금을 벌고, 몸으로 전 세계를 뛰며 봉사하는 ‘글로벌 사회공헌 대통령’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간절히 바라고, 또 믿습니다. 이제 우리의 대통령들도 퇴임하시면 검찰 조사 대신, 검사들과 함께 꽃동네에서, 소년원에서 헌신하는 날이 오기를...사사건건 국내 정치에 간섭하지 않고 아프리카로, 남미로 봉사활동을 다니며 세계인의 추앙을 받는 날이 오기를...
양규현 부국장 겸 정경부장 to61@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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