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진 서울대 교수(ICM 유치위원) |
ICM이란 4년마다 열리는 국제수학자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를 말한다. 조금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수여하는 무대가 바로 여기다. 그런데 대한민국 수학자들은 조용히 공부나 할 것이지 도대체 뭘 믿고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 걸까?
사실 2년 전 대한수학회가 ICM 유치위원회를 구성하고 활동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유치위원들의 심정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경쟁국이었던 캐나다와 브라질은 우리보다 몇 걸음 앞서 출발한 상태였다. 국내 수학자들 중에도 아직 시기상조가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대한민국 수학계는 그야말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1981년에는 국제 수준의 학술지에 출판된 논문이 7편에 불과하던 것이 2007년에는 408편으로 엄청나게 불어났다.
질적인 성장 또한 그에 못지않다. 이미 많은 국내 수학자들이 국제수학자대회를 비롯한 중요한 국제 학술회의에서 초청 강연을 하는 등 세계무대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국제수학자연맹(IMU)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도 격상됐다. 1981년 처음 가입할 때 5등급 중 1등급이었던 우리나라는 1993년에는 2등급으로 격상됐다가 2007년에는 한꺼번에 2등급을 뛰어 4등급이 되었다. 이런 예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리가 진짜 '믿는 도끼'는 따로 있었다. 바로 젊은 수학자들의 힘이다. 강남규(칼텍), 김영훈(서울대), 김주리(MIT대), 백진호(미시건대), 신석우(시카고대), 오희(브라운대) 등 일일이 기억하고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젊은 수학자들이 세계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해마다 열리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는 우리 고교생 대표들이 세계 3, 4위권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유치위원회가 준비한 캐치프레이즈가 '늦게 출발한 자들에게 꿈과 희망을'이었다. 대한민국의 수학 수준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함께 나아가자는 글로벌 비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신념과 야망이 IMU 집행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거의 불가능해보이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1994년 필즈상 수상자인 젤마노프 교수(샌디에이고 고등과학원)는 “자신이 그동안 목격한 몇 안 되는 기적 중의 하나”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힘들었고, 그만큼 극적이었다. 김도한 대한수학회장의 포용력과 박형주 유치위원장의 열정과 야망, 그리고 정부 관계부처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2주 남짓 지났건만 어느 새 그날의 감격보다는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가 커다란 국제학술행사를 치르는 것만을 목적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을 1년 남짓 앞두고 당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던 이용수 교수(세종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겉으로는 ‘월드컵 16강 진출’을 외치고 있지만 내 진짜 목표는 그게 아니다. 나는 이 기회에 대한민국 축구 문화를 확 바꿔버리고 싶다. 어린 후배들이 공부하며 축구할 수 있는 문화, 지도자와 심판들이 끊임없이 공부하는 문화, 국민 모두가 승부가 아니라 축구를 즐기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대한민국 수학자들이 ICM을 개최하려고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기회에 대한민국 수학 문화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 하고 싶다. 어린 학생들이 지겨운 마음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수학 문제 풀이에 도전하는 문화, 선생님들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는 문화, 국민 모두가 “수학 따위를 어디에 쓴다고 그래?”하고 반문하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공기처럼 마시고 호흡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학계뿐만 아니라 학계·문화계·산업계 등 다양한 분야의 지혜를 모아 5년 후, 10년 후, 50년 후를 내다보는 커다란 그림을 그려야 한다. 축제는 이제 막 준비를 시작했을 뿐이며 대한민국의 수학은 ‘ICM 2014’라는 도약대를 향하여 이제 막 도움닫기를 시작했을 뿐이다.
강석진 서울대 교수(ICM 유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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