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루카치 <소설의 이론>.
지난 12일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의 날’이었다. 자동차 수출누계 1000만 대를 돌파한 1999년 5월 12일을 기념해 2004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올해로 6회째지만 행사장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달랐다. 250여명이 자리를 지켰으나 미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모두들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미국 ‘빅3’의 몰락이 가시화 되는 시점이기도 해 몇몇 회사들은 버거운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공식 행사가 끝난 후 황급히 자리를 뜨는 완성차 회사 대표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예년에 비해 행사도 단출했다. 대략 2시간가량 진행됐지만, 식사 시간을 뺀 공식 행사는 20분을 조금 넘겼다. 참석자 수도 100여명 가량 줄었다. 한 참석자는 “IMF 이후 이렇게 까지 불황을 겪는 것은 처음이다”고 말을 할 정도였다.
이날 연사들도 참석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발언을 해댔다. 윤여철 한국자동차공업협회장은 “내수·수출 모두 감소하는 등 자동차산업은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빅3의 사례를 교훈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채민 지식경제부 차관은 “경제가 나아지고 있지만 낙관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산업과 융합된 새로운 개념의 차를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 향후 기업 생존 여부가 가려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불현듯 올 초 정부가 작성했다던 자동차 업계 ‘살생부’가 오버랩 됐다. 속설에서는 살생부의 시초를 1453년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으로 본다.
자신의 집권을 반대할 만한 신하들을 죽이기 위해 수양대군이 ‘칠삭둥이’ 한명회를 시켜 작성했다. 영의정 황보 인, 좌의정 김종서, 이조판서 조극관, 좌찬성 이양, 좌의정 정분과 안평대군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계유정란이다.
그 살생부가 현재까지 살아남아 다양한 모양새로 변주되며 쓰이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이름이 오르면 죽기(퇴출) 전에는 지워지지 않는 것. 수십 년을 나라와 경제에 이바지한 기업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의 신’. 권력의 달콤한 엑기스.
얼마 전 한 자동차 회사 홍보실에서 근무하던 차장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자신이라도 나가 줘야 짐을 덜 것 아니냐면서. 좋은 자리에 가서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기약은 없다.
실제로 국내 몇몇 업체는 풍전등화의 신세다. 구조조정에 내몰린 근로자들은 식솔들을 이끌고 길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이다. 결국 부인들까지 나서서 눈물로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허나 살생부는 심장이 없어 눈물을 모른다.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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