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글로벌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은 그 어느 때보다 좌불안석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전세계 금융시스템에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금융기업 CEO들에 대한 평가는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몸을 바쳤다는 찬사에서 탐욕과 오만함 그리고 안이함으로 일관했다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민태성 금융부 차장 |
구제자금이 투입되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은 은행들에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베어 총재는 물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원지인 미국의 CEO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추풍낙엽처럼 낙마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 시절 거대 보험사 AIG와 모기지업체 패니메이의 CEO가 파면됐고 파산 가능성이 농후한 제너럴모터스(GM)의 랙 왜고너 역시 회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베어 총재의 발언으로 일자리를 잃는 미국 금융권 CEO들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우리나라 금융권 역시 불안감은 확산되고 있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실적 악화가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CEO들의 리더십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은 당초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 키우기에 나서겠다고 장담했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최근에는 그룹 시너지 창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본확충펀드를 받는 신세에서 M&A를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인 스스로 말할 정도다.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을 지냈던 지난 2006년과 2007년 대규모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것도 황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예금보험공사와 체결한 경영이행약정(MOU)에 미달하는 실적을 기록하면서 어깨의 짐이 무거워지고 있다.
이 회장 취임 직후인 지난 3분기 우리금융의 순익이 1575억원에 그친데다 4분기에는 6648억원이라는 적자를 기록하며 4년9개월만에 처음으로 손실을 내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러나 이들 CEO들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 단순한 실수였다거나 경영상 필요한 조치였다는 말들 뿐이다.
CEO도 인간이다. 실수를 할 수 있고 실수를 통해 더욱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골드만삭스와 시티그룹의 고위 임원을 거쳐 미국의 제70대 재무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루빈은 저서 '글로벌 경제의 위기와 미국'(In An Uncertain World: Tough choices from Wall Street to Washington)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위기의식이 그토록 빨리 사라지는 사실에 놀랐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경험의 교훈을 아주 빨리 잊어버릴 수 있고 그래서 서투른 결정을 내리게 될 수 있다....(중략) 문제는 실수에 대처하는 태도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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