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팔겠다는 채권은행들의 외침에 시장의 반응이 무덤덤하다.
채권은행들이 비교적 좋은 조건에 알짜기업들을 내놓고 있지만 기업들의 자금여력이 악화된 데다 향후 경제 상황까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은행들은 지난해 말부터 굵직한 매각건을 시장에 올리고 있지만 기업들의 무관심 속에 번번이 미끄럼을 타고 있다.
현대종합상사 지분의 59.37%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 우리, 외환은행 등 주채권은행들은 지난 3월 19일 매각 공고를 냈다. 하지만 인수의사를 나타낸 곳은 현대중공업, BNG스틸, 큐캐피탈 등 3개사에 불과했다.
이 중 실제 인수전에 참여한 곳은 현대중공업이 유일했고 그나마 가격 조건이 맞지 않아 인수제안서 제출 24시간 만에 유찰됐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종합상사는 빠르면 8~9월 정도에 매각이 끝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번 유찰로 사실상 올해 매각은 어려워졌다.
지난해 말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매각에 나섰을 때도 인수의사를 나타낸 곳은 한화, 컨소시움을 형성한 포스코-LG, 현대중공업 등 3곳이었고 이 역시 가격 문제로 불발된 바 있다.
올 하반기 중 매물로 나올 것이 확실시 되는 하이닉스, 현대건설도 매각 여부가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김현중 동양종금 기업분석 연구원은 "국내에서 하이닉스를 인수하려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면서 "해외 매각은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지만 국내 알짜기업을 해외로 넘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이 마저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변성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매각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는 만큼 현대건설을 사려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현대그룹이나 현대중공업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들도 자금 상황이 여의치 않고, 그동안 인수ㆍ합병(M&A)에 적극적이었던 금호ㆍ두산 등도 구조조정 대상이라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들의 기업 매각은 앞으로가 더 문제다. 10여개 대기업그룹(주채무계열)이 재무 상태 개선을 위해 본격적인 자회사 매각에 나서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금호아시아나그룹ㆍ유진그룹ㆍ대한전선ㆍ동부그룹ㆍ두산그룹 등이 이미 계열사 매각에 나섰거나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산은, 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국책 금융기관들이 주채무계열 자회사를 인수할 계획이라 채권은행들의 매각건과는 무관해 보인다. 이들 인수된 기업이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거치고 경기침체가 완화되는 1~2년 뒤 시장에 매물로 나오기 때문에 채권은행들의 매각 작업에 악영향을 미칠 예상이다.
윤지호 한화증권 투자정보팀장은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상황이 좋지 않아 채권은행들은 지분 매각을 위해서는 국내 자본에 의지해야 할 상황"이라며 "주채무계열 자회사 매각으로 다소 지연되던 기업 지분 매각을 서두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하지만 "채권은행들이 팔려고 내놓은 기업 지분 매각 작업은 가격 조건 및 시장 상황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