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한 낙관론으로 돌아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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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5-1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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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훈 SK증권 리서치센터장

세계 경기는 작년 4분기 이래 빠른 속도로 수직 낙하해 60년만에 최악인 불황을 직면해 왔다. 특히 이번 불황은 여느 때와 달리 부동산을 중심으로 자산 디플레이션 현상을 수반한 데다 세계 동반 침체 현상이란 점에서 불확실성이 상당히 컸다. 이 때문에 1929년 미국 대공황 사태처럼 적어도 3~4년 동안 장기침체가 불가피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팽배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경기회복 조짐이 산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일부에선 때 이른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가는 물론 미국ㆍ유럽 일부에서도 거시지표가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수출에서 핵심인 반도체와 LCD 가격이 올해 들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 체온계 역할을 해 온 원유ㆍ원자재가격도 바닥권을 벗어나 지속적인 상승세로 돌아섰다. 펀더멘털 개선 요인보다 유동성 확대 요인에 힘입은 바 크겠지만 그동안 안전자산에만 몰렸던 투자자도 위험자산 쪽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신용스프레드가 뚜렷하게 축소되면서 국채에만 쏠렸던 시중자금이 우량 회사채와 투기등급 회사채까지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덕분에 세계적인 경제예측기관도 비관론 수위를 낮추거나 적어도 내년 상반기엔 경기회복이 가능할 것이란 낙관론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동안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아직까지 경기지표마다 방향이 갈리고 있어 비관론과 낙관론이 혼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작년 말과 비교하면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퇴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좀 더 확실한 판단을 위해 현재 경제환경과 1929년 대공황 때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먼저 대공황 당시엔 금본위제 시행으로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즉, 연방은행이 최후 대부자 역할을 하지 못 했다. 예금자보호제도도 없어 뱅크런이 심화되자 금융기관이 줄줄이 파산했다.

이는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킨 도화선이 됐다. 여기에 미국 정부는 내수부양을 위해 수입관세 인상 같은 이기주의적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선회해 상대국으로부터 보복관세를 초래했다. 결국 세계 교역량은 이전보다 절반 가까이 위축돼 세계경제 침체를 오히려 심화시켰다.

대공황 당시엔 사회안전망도 전무한 상태여서 고용악화, 수요부진, 생산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경제불황 기간을 더욱 늘렸다. 반면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경제 비상대책과 안전장치가 구비돼 있다. 이런 차이를 간과하고 이번 경제불황에 대해 지나친 비관론에 휩싸여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세계경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진행돼 온 세계화 덕분에 경기침체에 대한 전세계적인 정책 공조가 가능해졌다. 작년 말부터 각국 정부는 경기침체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리고 재정지출을 확대했다. 이는 내수 급감과 금융시스템 마비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돼 왔다. 주요20개국(G20) 주도로 5조 달러 규모 경기부양정책을 올해 말까지 실시하기로 한 것은 대표적인 정책 공조 사례다. IT 기술 발달로 정부 정책집행과 기업 의사결정 간 시차가 크게 줄어든 점도 경기회복에 도움을 주고 있다. 여기에 각국 사회안전망 제도는 내수 격감을 막는 역할을 해 왔다.

이런 변수가 경기회복 시기를 앞당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대공황 당시 저질렀던 실수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각국 의지도 경기침체 해소에 보탬이 됐다. 지나친 비관론에서 탈피해 신중한 낙관론으로 인식을 전환할 시기가 온 것이다. 물론 이번 경기 변곡점에서도 단순한 지표상 회복보단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업 구조조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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