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각종 규제완화 조치에도 대기업들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투자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자산총액 기준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들의 올해 3월 말 기준 유보율은 945.54%로 1년 전보다 60.80%포인트 상승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12월 결산 10대 그룹 계열사 중 작년과 비교 가능한 65곳이 분석대상이었다.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비율인 유보율은 영업활동 혹은 자본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얼마나 사내에 쌓아두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비율이 높으면 통상 재무구조가 탄탄하다는 의미이지만 반대로 투자 등 생산적 부문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고 고여 있다는 부정적 의미도 된다.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의 자본금은 24조6천494억 원으로 1년 전보다 0.27% 증가하는데 그쳤지만, 잉여금은 233조698억 원으로 같은 기간 6.59% 늘었다.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을 투자하지 않고 곳간에 쌓아놓으면서 잉여금이 자본금의 10배에 달하게 된 셈이다.
그룹별로 보면 포스코가 5천782.94%로 가장 높았고 현대중공업(1천906.88%), 삼성(1천659.57%), SK(1천548.89%), 롯데(1천316.70%) 순이었다. 현대차(665.57%)와 GS(592.54%), 한진(506.60%), LG(425.18%), 금호아시아나(214.32%) 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10대 그룹의 유보율은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상승했다. 2004년 말 600%를 돌파한 데 이어 2007년 들어서는 700%대, 2008년 상반기에는 800%대로 올라서고 작년 말에는 948.21%까지 뛰어올랐다.
수익성 개선에 힘입은 대기업의 유보율 상승은 경제위기를 버틸 수 있는 체력이 탄탄하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경기침체 여파로 올해 1분기 10대 그룹의 순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63.61% 급감함에 따라 작년 말에 비해 유보율이 2.67%포인트 하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회복과 고용창출을 위해 기업들의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자금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유보율을 유지하면서 투자를 외면하는 것은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기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는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줬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꺼림에 따라 지난해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은 -2.0%를 기록해 2003년(-1.2%) 이후 5년 만에 감소세를 보였다.
올해 1분기 설비투자액도 17조7천46억 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22.1% 급감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올해 1분기에 대기업들이 적극 투자에 나서지 못한 것은 동유럽 위기설 등 금융시장 불안 여파로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재훈 대우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철강, 자동차, 조선, 정보기술(IT) 등 국내 주력업종이 공급과잉인 상태에서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기는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를 계속 꺼릴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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