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 자연으로 돌아간 노대통령을 추모하며-
박기태(전 경주대 부총장)
천지가 푸르른 오월, 고요한 토요일 아침을 깨운 것은 충격에 망연자실할 뿐인 노무현 직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또 한 장의 비극을 더하는 역사적 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퇴임후 불과 열 넉 달 남짓한 시간은 이렇게 대한민국의 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을 만큼 치열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영광으로 나아가는 승화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전직 대통령 중 최초로 고향으로 돌아간 노무현 대통령에게 주어진 평화의 시간은 단 넉 달에 불과 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붙여진 풍운아라는 별호가 그러하듯 재임 5년간도 결코 평화로운 시간은 아니었지만, 퇴임 후 전직 대통령에게 시시각의 정치적 상황은 서서히 파국으로 내몰아 갔다. 퇴임 후 넉 달이 지나지 않아 재임 당시의 국가정보 유출의 일로, 이어진 소고기파동 촛불시위로, 끝내는 평생의 정치적 동지와 그 후원자들의 줄을 잇는 수사와 구속이란 정치적 격랑에 좌초되고 말았다. 그는 분명 정치적 격랑에 좌초된 비운의 대통령이다. 바람의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이 끝내 피할 수 없었던 그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에게 이렇게 슬픈 역사를 쓰게 하는가. 법적. 도덕적인 공방은 대통령이 떠남으로서 시시비비조차 가릴 수 없게 되었지만 대한민국 정치가 가한 그에 대한 공격은 한 마디로 치졸하고 부끄러운 짓거리, 바로 그것이었다. 특정의 개인이나 세력이 가한 공격이라 하지 않고 대한민국 정치가 가한 공격이라 하는 것은 현 정권의 정치적 보복이라는 단순한 권력게임이 아니라 정점에서 내려선 최고 권력에 대하여 대한민국이란 체제와 그 구성원이 가한 집단 폭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을 수 없는 병’이 마침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자신 있게 부인할 수 없기에 그렇다.
승자가 하는 일 치고는 과하다 싶었다. 관용과 포용이 승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란 말을 되새겨 주길 간절히 바랐었다. 정치의 역사는 뒷 권력이 쓰는 앞 권력에 대한 진솔한 회상의 기록이다. 물려받지 못한 권력이라면 밉기도 할 것이다. 더구나 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란 뺐고 빼앗기는 투쟁의 결과가 아니던가.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가한 정치적 공격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아직은 우리 곁에 있어야 할 애증의 전직 대통령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 않다. 청사를 엮어가는 언론과 수많은 기록자들이 이미 따질 만큼 따졌고, 알 만큼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슬픔 역사의 비극을 넘어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야 할 숙명의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어제의 그 엄청난 사실이 날이 새면 또 한 시점의 역사가 되는 냉엄한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사람에게서 분노와 슬픔이란 살아있음의 표현이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영약이다. 분노하는 이에게는 분노하게, 슬퍼하는 이에게는 울게 하라. 눈물로 밤새우며 분향소를 지킨 평범한 시민들이 삭이는 분노와 슬픔을 헤아려야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이 가장 먼 길이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우리가 만났던 대통령 가운데 머리에서 가슴을 지나 가장 빨리 발로 달려와 뜨겁게 끌어안고 함께 환호하던 그를 추모하고 있다. 정의를 외치던 그의 불같은 분노를 보고 싶은 것이다. 천년바위에 몸을 던져 한조각 자연으로 돌아간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행여나 정치적 주판알을 굴리며 거짓 눈물을 보이는 역사의 적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진주는 아픈 조개의 눈물이라고 한다. 오늘 우리의 이 비통한 눈물이 내일은 역사의 진주가 되어 찬란히 빛나야한다. 진정한 화해와 비극의 종말을 보려 한다면 그들을 마음껏 소리 높여 울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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