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전 대통령 서거] "님의 미소가 자꾸 떠오릅니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09-05-29 08:18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노 전 대통령 서거 닷새째···새벽까지 조문행렬 이어지고

이승을 버리고 저승으로 가는 시간이 닷새째로 접어든 27일.

이날도 어김없이 수만 명의 인파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위해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누구는 "죽임을 당했다"며 분해하며 통곡하고 누구는 "편안히 쉬시라"며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의 웃음이 한껏 배어 있는 영정 사진에 눈물을 훔치는 부모와 그 옆의 어린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부모 얼굴을 낯설어 한다.

오전 6시 30분. 분향소로 이동하는 차량을 타니 이미 자리는 꽉 차 있고 서 있는 사람들도 공간이 좁다.

10여분을 달린 후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도착하면 1km 가량을 이동해야 하는데 조문을 마친 사람들과 조문을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차량 운행을 하는 임동규(31)씨는 "밤새도록 운행해 한숨도 못잤다"며 "어제 새벽 4시까지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낮동안 통근 업무를 한 후 짬이 날 때 잠을 자는 생활이 3일째"라며 피로한 기색을 보였다.

봉하마을로 들어서는 셔틀버스는 17대 이상으로 늘었다. 차량은 현재 진영공설운동장 진영여객터미날 김해공항 밀양 등 외지에서 들어오는 길목마다 배치돼 있다.

진입로 옆 가드레일에는 "활짝 웃는 님의 미소 자꾸 떠오릅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깃대를 시작으로 수백개가 꽂혀 있다.

오전 7시. 금련선원(경북 경주) 금선선원(경남 함양) 흥륜사(경북 경주) 3곳 80여명의 스님이 분향소를 찾았다. 불교계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둘째날 해운사 스님 350여명을 시작으로 대규모 행렬과 개인적인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정혜스님은 "삶과 죽음은 하나다. 하지만 나라의 어른이 이런 일을 당해서 명복을 빌어드리고자 왔다"고 말했다.

상(喪) 중임에도 공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은 컸다. 이운우 경남경찰청장을 비롯한 총경급 이상 간부 33명이 8시쯤 줄을 서지 않고 조문에 나서자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조문객들이 "법과 질서를 강조하던 너희가 이런 것(줄서기)은 안 지키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10시께 출근 시간이 지나자 조문객들은 여유를 갖고 한층 꼼꼼히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을 챙겨봤다.

이복희(56· 경남 사천)씨는 노 전 대통령 사저를 가리키며 "내 친구 별장도 저만한 데 뭘 그리 시끄럽게 뭐라했노"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옆에 있던 일행 중 한명은 곧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시골에서 잘 지내시라고 한 마디만 해줬어도 일이 이리 되지는 않았을낀데..."라며 아쉬워했다.

12시가 되자 인파는 더욱 늘었다. 자원봉사자들이 10명과 5명으로 행렬을 정리하는 곳까지만 1300여명. 이후 하얀 끈으로 차도 위에 길을 만든 곳이 200m 이상 돼 줄을 선 시민만 대략 1700여명으로 추산됐다. 버스에서 내려 빈소 앞에 서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자원봉사자들은 연신 무전기를 통해 "뒤쪽에 줄이 너무 길다. 진행을 빨리 해달라"며 분향소에 연락을 취했고 물병을 날랐다. 나눠진 신문은 미처 양산을 가져오지 못한 사람들의 해 가리개로 쓰였다.

이날 기온은 12시 현재 27도 가량이지만 햇살이 뜨거워 사람들은 검게 그을렸다.

이날 빈소에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이용수(82) 할머니도 찾았다.

이용수 할머니는 "명절 때마다 노 전 대통령 부부는 선물을 꼭 챙겨주셨다"며 개인적인 친분을 밝히면서 "노 전 대통령은 끔찍이 대한민국을 사랑하셨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3시를 넘어서자 노 전 대통령 사저로 향하는 발길이 더욱 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현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졌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현장체험 학습을 위해 충남 예산에서 온 남 모씨(41)는 “사실 지금 정부에 대한 국민적 호응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현 정부가 각성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경남 진해에서 몸이 불편한 노부를 모시고 봉하마을을 찾은 배병욱(33)씨는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퇴하겠다고 뜻을 밝힌 것으로, 국민들은 이미 누구 잘못인지 다 알게 됐다”며 “하지만 이번 일로 서로의 반목을 키울 게 아니라 여야 서로가 화합하는 쪽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명록 작성을 돕고 있는 자원봉사자는 “하루에 방명록이 60권씩 만들어진다”고 전했다.

방명록에는 빽빽한 글씨로 한바닥을 채운 것부터 한 줄로 심경을 표현한 것까지 다양했다.

노란 리본이 걸려있는 거리에 자율 방명록까지 생각하면 조문객들의 마음은 더욱 커진다. “착한 대통령 할아버지 엄마 아빠가 행복했대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 탄핵무효돌이 6살 예원이가.” 노 전 대통령 사진 위에 적힌 글이다. 

김해/ 김종원·안광석 기자 jjong@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