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성의 금융프리즘) 용두사미 꼴나는 대기업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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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5-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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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미(龍頭蛇尾). 용 머리에 뱀의 꼬리라는 뜻으로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사자성어다. 용두사미의 기원은 중국 송나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나라 때 용흥사라는 사찰에 진존숙이라는 유명한 스님이 있었다. 당시 불교에는 상대방의 도를 알아보기 위해 선문답을 주고 받는 관행이 있었다.

어느 날 진존숙이 길에서 만난 스님을 상대로 화두를 던지자 상대방이 큰소리로 맞받아쳤다. 진존숙이 '아차'하며 한걸음 물러서자 상대는 다시 한번 큰소리로 기를 눌렀다.

   
 
민태성 금융부 차장
이 스님은 상당한 수양을 쌓은 듯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리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다. 진존숙은 '이 중이 그럴듯 하나 참으로 도를 깨친 것 같지는 않고 단지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진존숙은 상대에게 "호령하는 위세는 좋으나 무엇으로 마무리를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상대는 뱀이 꼬리를 내리듯이 슬그머니 답변을 피했다.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짙어지면서 대기업 집단의 체질 개선을 외치며 공격적으로 진행한 대기업 구조조정안이 용두사미 꼴이 되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 압박을 받고 있는 대기업 집단과 주채권은행단의 재무구조 개선약정(MOU) 시한이 임박했지만 뚜렷한 윤곽은 나오지 않고 있다.

주채권은행단은 이미 상당수가 약정 대상그룹에 주력 계열사라도 팔라는 경고를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현실성있는 자구노력을 약속했던 기업 측이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6개월 안에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을 매각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려야 하는데 기업 쪽이 제시한 안에는 현실성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주채원은행단의 반응이다.

대기업 집단은 채권은행단이 너무하다는 입장이다. 무리한 매각은 살길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정리하는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김종창 금융감독원 원장을 비롯해 진동수 금융위원장까지 나서 주채권은행단과 대기업집단에 대해 강도 높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약발은 좀처럼 먹혀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의지에 대한 회의감마저 대두되고 있다. 주채무계열 재무평가에서 14개 그룹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지만 강제성이 있는 재무개선약정(MOU)을 맺는 기업은 9개 뿐이다.

대기업들이 금융당국과 주채권은행에 대해 '강짜'를 놓고 있는 것도 이같은 금융당국과 채권은행의 솜방망이식 대응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금융당국이 기업구조조정이 채권은행 주도로, 채권은행의 판단에 따라 진행한다는 원칙을 세워놨지만 실질적으로 채권은행들의 권한은 한정돼 있다는 점도 구조조정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5월 말로 예정된 재무구조 약정시한이 지연될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지난달 말 45개 주채무계열에 이어 1400개 계별 대기업을 상대로 구조조정 대상 선별작업을 벌이면서 탄력을 받는 듯한 구조조정안이 결국은 흐지부지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북한 핵실험 여파로 가뜩이나 나라 안팎이 뒤숭숭한 가운데 경제 문제도 얽히고 있다. 이래저래 어지러운 세상이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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