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헐값에 발행한 혐의’로 기소된 허태학·박노빈 전 에버랜드 사장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역시 같은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13년 가까이 지속된 CB 헐값 매각 논란에 대법원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번 판결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 활동에 파란불이 켜졌다. 올해 초 조직 및 인사 개편을 마친 삼성이 이재용 전무 체제로의 전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성이 당분간 ‘정중동’의 모습을 견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상당수 국민들이 여전히 의혹을 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에는 11명의 대법관 가운데 6명이 무죄, 5명이 유죄를 판단했다. 이들 가운데 한 명만이라도 다른 의견을 냈다면 결과가 뒤집힐 수 있었다. 특히 이번 판결에는 촛불집회 개입 의혹으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이 참여해 무죄 판단을 내렸다.
여기에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삼성 특검팀의 수사 강도를 비교하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예기치 않게 노 전 대통령과 얽히면서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불똥이 삼성에 튈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공판은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당일에 진행됐다.
아울러 대법원은 CB 관련 사안과는 달리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이번 BW 헐값발행으로 회사에 끼친 손실이 50억원 이상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올 경우 이 전 회장은 유죄를 선고받는다. 50억원 이하면 공소시효가 만료되지만 이상일 경우 공소시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에게 적용되는 혐의는 무기 혹은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상 배임죄다.
에버랜드 CB 관련 무죄 선언을 받고도 삼성그룹은 비판적 여론과 여전히 끝나지 않은 BW 판결로 인해 숨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에버랜드 CB 발행에 대한 논란이 종지부를 찍으면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가로막았던 큰 장벽이 사라졌지만 삼성은 긍정적인 여론 형성이라는 더 큰 숙제를 안게 됐다”며 “약속했던 이 전회장의 사회환원이 활발히 이뤄지고 경기 부양을 위한 삼성의 노력이 가시화되면 비판 여론도 금세 수그러들 것”이라고 전했다.
이하늘 기자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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