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수합병(M&A)은 기술과 생산라인, 유통망 등 기업 성장에 긴요한 자산을 확충하는 데 매우 유효한 수단이다. 조직간 통합으로 한순간에 덩치가 커지는 만큼 조직 내부의 유기적 성장에 따른 고통과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 지금과 같은 불경기는 자산가치가 크게 떨어진 기업을 좋은 조건에 인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전문가들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M&A가 지속적인 주주가치 향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전체 M&A 사례 가운데 절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업체 AT커니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제품 복잡도(product complexity)' 관리 부실을 그 원인으로 꼽고 M&A 추진을 본격화하기 전에 제품 복잡도를 관리하기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M&A로 두 회사가 결합하게 되면 SKU(Stock Keeping Units·최소유지 상품 단위), 즉 제품(서비스)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이를 생산하는 공정과 유통과정도 복잡해진다. '제품 복잡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제품 복잡도만 잘 관리해도 비용을 최대 30% 줄일 수 있다. 우선 제품 및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잘 통합하면 생산 설비와 유통망 등 인프라 구축 비용과 원료비 등을 절감할 수 있다.
또 생산과 유통 과정의 관리 및 보고 체계가 단순화되기 때문에 시스템 구축을 위한 IT(정보기술) 투자비용도 줄어든다.
제품 복잡도의 체계적인 관리는 영업 부문에도 영향을 미친다. 제품 복잡도가 갑자기 증가하면 영업사원들은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 결과 이들은 통합 기업의 수익을 높일 수 있는 제품보다는 이미 익숙한 제품 판매에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제품 통합 계획이 마련되면 통합 회사가 역량을 쏟을 제품과 그에 따른 영업 전략이 명확해지기 때문에 영업사원은 물론 고객들의 동요도 막을 수 있다.
제품 복잡도 관리는 두 회사의 통합력도 높여 준다. 제품 복잡도가 제한될 수록 외부로부터 품질 저하나 생산 지연 등에 따른 문제 제기가 적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더 내부 통합에 집중할 여력이 커진다.
하지만 AT커니는 많은 기업들이 M&A를 확정하고 나서도 제품 복잡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이 제품 생산 비용을 정확히 산출해 내지 못하거나 이른바 효자 제품의 갑작스런 생산 중단이 수익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또 M&A 직후 피인수 기업의 제품을 당분간 그대로 생산하는 것이 새 식구를 맞는 예의라는 잘못된 인식도 제품 복잡도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때문에 AT커니는 M&A 타깃을 정한 직후 제품 복잡도 관리를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라고 강조한다. 그래야 M&A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고 시너지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인수 기업과 인수 대상 기업의 제품 복잡도를 동시에 지도화(mapping)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양 기업이 생산하고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나열하다 보면 새로 파생될 수 있는 '변종' 제품과 서비스가 지도에 나타나게 된다.
지도화 과정을 통해 기업은 변종 제품 및 서비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응할 수 있고 앞으로 제품이 어떻게 변하게 될 지 내다보고 대비책을 세울 수 있다.
지도가 그려졌으면 각각의 변종을 평가해 제품 개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인수 기업은 편견 없이 잠재력이 큰 제품과 구성 요소, 이들의 상관관계 및 비용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통합 기업이 주력으로 삼아야할 제품을 골라내 곁가지를 제거하는 만큼 잠재적인 비용 역시 크게 줄일 수 있다.
이제 남은 건 통합 청사진을 마련하는 일이다. 청사진에는 통합 기업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모든 제품이 최적의 통합 상태로 나타난다.
여기에 세부적인 시나리오 분석만 덧붙여지면 제품 복잡도가 최적화돼 기업은 M&A를 통해 기대한 가치 창출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AT커니는 설명한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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