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이른바 '브릭스(BRICs)' 정상들이 오는 16일(현지시각) 러시아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고 '달러화 흔들기'에 나설 전망이다. 지난 3월 중국이 세계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화의 위상을 깎아내린 데 이어 이번에는 러시아가 '슈퍼통화' 논의의 전면에 나설 태세다.
중국과 러시아의 외화보유액 규모가 세계 1, 3위에 해당하는 만큼 양국의 공조는 상당한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기축통화가 미래 금융 시스템의 토대가 될 것이며 미 달러화의 움직임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취약점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미래 국제 금융시스템의 기반을 창조할 수 있는 세계 공통의 지불 수단 같은 게 필요하다"면서 "미국 경제 위기로 달러화에 대한 시장 인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기축통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루블화도 기축통화 논의에 포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지난 4월 런던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도 슈퍼통화에 대한 논의를 제의한 바 있고 지난 3월에도 크렘린궁 성명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이 새로운 기축통화를 발행해 달러화를 대체해야 한다"며 중국의 달러화 흔들기에 동참했다.
당시 저우샤오찬 중국인민은행 총재는 은행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달러화나 유로화와 같은 특정 국가 통화의 지배력을 줄일 수 있도록 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새로운 기축통화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SDR은 IMF가 달러화와 유로화 등 세계 주요 통화의 가치를 한 데 묶어 만든 통합 통화로 여러 종류의 화폐로 구성된 외환보유고를 통합적으로 표시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IMF는 가맹국들의 외환보유고 회계처리에 SDR을 사용하고 있다.
저우 총재는 글에서 달러화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금융위기와 이 위기의 전세계적인 확산은 현존하고 있는 국제 통화 시스템에 내재된 취약성과 시스템적인 위험을 반영한다"며 달러화 중심의 세계 금융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SDR이 세계 기축통화가 되면 특정 국가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어 각국이 보다 자유로운 통화정책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재원 고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IMF의 재원을 확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와 브라질도 중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슈퍼통화를 제안하고 나선 데 대해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는 우선 브릭스를 중심으로 이머징국가들 사이에서 지지세를 불려 나갈 계획이다.
특히 유례없는 성장세를 뽐내왔고 현 경제위기 속에서도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브릭스의 저력은 이머징 국가에 대한 영향력 강화로 이어져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재편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새 기축통화의 출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SDR의 경우 지난 1970년대 초반 일부 은행이 활용한 적이 있지만 너무 협소해 활성화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의 달러화 흔들기는 세계 경제에 대한 주도권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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