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신병처리 카드 대미 협상 활용 무게

북한에 억류중인 미국 여기자 2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향후 북미관계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은 현대아산 직원 유 모씨를 체제비난, 탈북책동 등의 혐의로 억류한 이후 지금까지 처분문제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는 것과 달리, 이들 여기자에 대해서는 상반된 대응을 보이고 있어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면에는 전세계 여론을 지켜보면서 신중히 접근, 대미협상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 3월17일 두만강 유역에서 취재 도중 붙잡힌 미국 커런트TV의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기자에 대한 재판이 4일 진행됐다.

북한 형법에 따르면 재판은 기록이 접수된 날로부터 25일 안에 끝내도록 돼있지만 두 여기자의 재판이 최고법원인 중앙재판소에서 진행되는 점으로 미뤄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첫 재판이 진행되면서 두 여기자의 신병 처리를 위해 북미간의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북한은 이들 여기자 2명을 불법입경 등의 혐의로 구속한 후 나흘 만에 언론을 통해 체포사실을 공개했으며, 기소 방침, 기소 결정, 재판 일정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북한이 이들 여기자에 대한 재판 날짜를 예고한데 이어 이날 재판 시작 시간(오후3시)까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외부에 알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이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북한은 개성공단 직원 유 씨의 경우와 달리 주 북한 스웨덴 대사관 관계자가 이들을 접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가족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북미간 대화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이유다.

아울러 북한은 과거에도 미국인을 억류했다가 협상을 통해 풀어준 적이 있어 이들 여기자가 대미협상 카드가 아니냐는 예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1994년 12월 강원 금강군 이포리 휴전선 지역에서 순찰비행을 하던 중 북한영공으로 진입했다가 피격돼 붙잡힌 주한미군 헬기조종사 보비 홀 준위가 억류됐다. 빌 리처드슨 미국 하원의원이 방북해 북한과의 협상 끝에 13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1996년 8월에도 술을 마시고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간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 씨가 간첩 혐의로 북한에 억류됐다. 역시 11월 방북한 리처드슨 의원이 북측과 협상해 풀려났다.

2차례의 석방을 이끌어냈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재판이 끝나면 그 때가 바로 (북한과) 협상에 착수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정부도 재판 이후 북·미관계 향방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북·미관계는 물론 유 씨에 대한 처분 방향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자 재판결과와 유 씨문제를 직접적으로 연관짓는 것에는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통일부 관계자는 “과거 북미간의 협상조건에 대해서는 우리가 밝힐 수 없다”며 “유 씨문제도 아직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도 “북한은 어떤 형태로든 여기자들을 매개로 대미 접촉을 하려는 생각일 것이며, 미국도 대북제재 국면과 별개로 자국민 인도를 위해 일정한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며 “유 씨문제를 비롯,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은 북미간의 논의결과 등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여기자 재판 이후 북미간 대화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 또한 거시적인 측면에서 대북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고일동 KDI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유씨 문제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어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이라며 “넓은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야지, 유씨문제만 해결하려고 해서는 북한이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두 여기자가 소속된 커런트 TV의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이 특사 자격으로 방북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그런 소문을 듣지 못했다”며 “고어 전 부통령은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두 여기자의 가족들은 지난 3일 CNN과 NBC 등 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북측에 대한 사과와 함께 미국 국무부는 북한이 이들을 재판절차없이 미국으로 돌려보내 주길 바라고 있다며 조기석방을 거듭 촉구했다. 

이보람 기자 boram@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고궁걷기대회_기사뷰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