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가 모두 공개해 왔던 보유종목 현황을 금융당국이 일부만 알리도록 해 투자자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자칫 투자자 동의 없이 '묻지마' 투자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8일 금융투자협회는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도입된 금융투자업 규정 시행세칙에 따라 펀드 투자자에게 통보할 자산운용보고서고서상 보유종목 현황을 대폭 축소한 작성ㆍ제공 요령을 모든 금융투자회사에 전달했다.
이는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자본시장법 후속 조치 가운데 하나다.
새 자산운용보고서 작성ㆍ제공 요령은 금융투자회사가 자산운용보고서를 작성할 때 상위 5개 주식과 총발행 수량 1% 초과 종목만 투자자에게 알리도록 했다.
채권ㆍ어음ㆍ집합투자증권 역시 상위 5개 종목만 명시하면 된다.
그러나 주식형펀드가 대개 70~80개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자 입장에선 자기 돈이 어디에 투자됐는 지 알 길이 사라지는 셈이다.
기존 간접투자자산운용법 시행령은 펀드 자산운용보고서에 보유 종목을 모두 명시하도록 규정해 왔다.
자산운용사가 펀드별 상위 10개 종목을 펀드평가사에 통보하는 시점도 기존 1개월에서 2개월 후로 늦춰졌다.
투자자와 펀드평가사가 투자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한 달이나 늦춰진 것이다.
이에 일반 투자자와 펀드 전문가 모두 반발하고 있다.
투자자를 보호해야 할 금융당국이 오히려 묻지마식 투자를 부추긴다는 이야기다.
오성진 현대증권 웰스메니지먼트컨설팅센터장은 "운용보고서상 보유종목 수를 줄이고 펀드평가사에 정보 제공을 늦춘 점은 투자자 보호보단 운용사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오 센터장은 "제대로 된 펀드투자를 하려면 투자자가 편입된 종목을 이해하고 제대로 운용되는 지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묻지마 투자를 하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휘곤 삼성증권 연구원도 "새 지침으론 펀드가 어떻게 운용되는 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국내주식형펀드 대부분은 상위 5개 종목 안에 삼성전자ㆍ현대차를 담고 있어 운용보고서가 모두 비슷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했다.
3년 전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 A씨는 "내 돈이 들어간 펀드가 뭘 투자하는 지 알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며 "3년이나 장기 투자한 펀드도 수익률이 마이너스인데 운용사를 어떻게 믿고 맡기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새 지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기존 자산운용보고서는 과도한 분량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투자자에게 불필요한 정보는 빼고 필요한 정보만 주자는 차원에서 통보 대상 보유종목 수를 줄였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외국 사례를 봐도 모든 종목을 다 통보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오성민 기자 nickioh@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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