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없는 法개정 논란


비정규직 근로자 수십만명은 다음달부터 해고냐, 정규직 전환이냐는 운명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비정규직으로 2년을 근속하면 정규직으로 바꿔주도록 의무화한 비정규직 관련법이 시행된지 다음달로 2년이 되면서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는 비정규직이 급속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꿈을 꿀 수도 있지만 정반대로 사용자가 이를 거부하며 해고하면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된다. 말 그대로 '운명'이 엇갈리는 것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이러한 운명의 기로에 놓인 근로자는 무려 70만명에 달한다.

일부에서는 `실업대란'마저 우려하는 상황이지만 비정규직 관련법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개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는 아직까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해 당사자들이 한치의 타협점도 찾지 못한 채 각자의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기간 2년으로는 자연스럽게 정규직 전환으로 이끄는 힘이 달리겠지만 고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면 기업 입장에서도 4년간 업무를 익힌 근로자가 아까워서라도 정규직으로 돌리지 않겠느냐는 것이 법 개정을 추진하는 정부의 인식이다.

노동부의 허원용 고용평등정책관은 "2년 고용후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한 현행 법안이 그대로 유지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기보다 그냥 해고시키는 사업장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가 나빠지면 일부 직원을 해고시켜 수익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인데 해고가 까다로운 정규직을 더 늘리려는 사업주가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이에 대해 "비정규직법의 취지를 말살하기 위해 `실업대란' 운운하며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행 노동 관련법으로도 구조조정 등을 위해 정규직 해고가 충분히 가능해 사용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꺼릴 이유가 없는데도 정부가 대량해고 가능성을 흘리며 관련법을 개악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민주노총의 김태현 정책실장은 "비정규직법 시행 후 상당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등 법의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임신이나 육아휴직 등 특정한 사유로 일시적인 업무공백이 발생한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별도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마련해 민주노동당을 통해 입법을 추진중이다.

야당인 민주당도 노동계에 동조해 정부안을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6월 임시국회에서 저지해야 할 악법으로 규정하고 정규직 전환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노동계와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여당인 한나라당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다. 4월에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는 현행 법의 시행을 4년간 유예하자는 일종의 타협안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사용자 측인 재계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해 고용기한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비정규직 고용기한을 4년으로 연장하거나 현행 법 적용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사용기한 규정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노동계, 야당, 재계의 목소리가 모두 다른 사인사색(四人四色)의 분위기가 연출되는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여야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달 내 비정규직법 문제가 타협을 통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인터넷뉴스팀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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