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수의 돋보기세상) 조선 사대부들의 상인혐오증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물에 있어서는 물처럼 공평해야 하고, 사람에 있어서는 저울대처럼 바르게 하라' )라는 좌우명을 남긴 조선 만상(灣商) 임상옥(1779∼1855)은 현대 기업경영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다. 

그런 그도 동시대에서는 신분제의 한계때문에 평생 빈민사업을 벌이고도 존경조차 받지 못했다. 헌종 원년 1834년 의주일대에 수해가 발생할 때 임상옥은 거액의 재산을 의연(義捐)재물로 내놓았다. 이 일로 임상옥은 곽산군수직을 제수받았다. 즉위원년‘수해’라는 자연재해를 맞은 헌종은 고마움의 표시로 군수직 임명 넉 달 만에 다시 당상관인 귀성부사 승차라는 파격인사를 내렸다. 그러나 비변사는 부사 승차가 적절치 않다고  반대했다. 곽산군수 재직시 임상옥의 근무성적이 좋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임상옥은 당상관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비변사의 명분은 인사고과의 문제였지만 뿌리깊은 사대부들의 상인혐오증이 그 원인임을 짐작하고 남는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사농(士農)을 중시했던 시대상황과 상인에 대한 편견에 사로 잡혔다.  사대부들이 즐겨 읽은 『사기』『주례』 등  고대 역사서와 유교경전에서는 상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한 탓 때문일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한고조 유방(BC202 ~ BC195)이 상인들이 좋은 옷을 입지 못하고, 수레를 타지 못하게 하였으며, 조세를 과중하게 물린 것은 옳은 일이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사기』이외 일부 중국 역사서에서도 기근일 때 상인들이 담합해 물가를 몇 배로 올려받아, 민생파탄의 주범이 되는가 하면 재물로 권력에 빌붙어 국정농단을 ‘식은죽먹기’로 해댄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한(漢)문제(B,C 180~B.C 157) 때 당시 상인집단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기의 부유한 처지로 왕후들과 교제함으로써 권력이 관리들을 능가하며, 귀인과 고관의 출입이 끊어지지 않으며, 좋은 신에 비단옷을 감고 다닙니다. 지금 법률에 상인을 천시하게 돼 있으나 상인은 이미 부귀를 누리고 있으며, 농민을 중시하게 돼 있으나 농민은 이미 빈천해졌습니다”.<『경세유표』제10권>

다시 반기업적 정서가 고개를 들 조짐이다. 단돈 69억원으로 수십조원대의 매출을 올린 초일류 기업 삼성의 경영권 승계문제가 현행법률로 추인한 법원 결정에 세간의 민심이 드세기 때문이다. 사법부에 이어 정치권도 삼성 때문에 시끄럽다. 여당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합법화라는 금산분리완화법안을 밀어붙일 태세이기 때문이다.   

최근 구자경 LG 전회장의 조용한 선행이 회자되고 있다. 구 전회장이 지시로 지난 1996년 개관한 상암도서관에 무려 300만명이 다녀갔다. 시각장애인전용인 이 도서관은  전용휴대폰이나 PC를 통해 도서관 서버(http://voice.lg.or.kr)에 접속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상암도서관은 매달 30권 이상씩 소설 교양도서 등 장서를 음성으로 제작한다고 한다.

구 전회장의 선행은 마땅히 칭찬받아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비단옷을 휘감고, 왕후들과 교제해 권력이 관리들을 능가하는' 이들 때문에 그의 행적이 가려질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박용수 기자 pe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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