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지난 1997~1998년 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 당시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한국에 대한 외신의 평가다. 이 외신은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성공하며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알렸다고 자축하는 동안 부실을 방치했다"고 꼬집었다. 자만심이 빚어낸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이러한 상황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미국 자동차 메이커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의 몰락만 봐도 그렇다. 한때 세계 자동차업계를 주름 잡았던 이들은 타성에 젖어 변화를 거부한 채 허세를 부리다 결국 파산법정의 보호 아래 놓였다.
경영학자 개리 해멀은 월스트리트저널 블로그인 '개리 해멀의 매니지먼트 2.0'에서 "한 때 존경 받던 기업이 쓰러지는 것은 성공이 끊임 없는 자기 수정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간과해 실패의 씨앗을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멀은 성공에서 실패가 움트는 원인으로 제일 먼저 방어기제를 꼽았다. 소위 잘 나가는 기업이 되면 조직 전체에 방어기제가 만들어져 전진하기 보다는 후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은 이렇다. 기업이 해당 업계의 리더가 되는 순간 조직원 전체가 그동안 이룬 성과를 지켜내기 위해 철옹성을 쌓는다. 젊은 시절 혁명을 부르짖다 기성세대가 돼 보수로 전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잃을 게 많다'고 인식하게 되면 변화가 두렵고 모험이 무모하게 느껴진다. 해멀은 "과거 '혁명가'처럼 기존의 구조를 뒤엎던 이들이 성공을 거머쥐면 '극우파'로 변신한다"고 지적했다.
'전향'한 기업 고위 간부들은 후발 주자들의 성장을 막기 위해 미국이나 유럽 정가(政街)에 온갖 로비를 시도한다. 해멀은 이러한 행태가 기업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화마저 원천봉쇄해 실패의 씨앗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업계에서 자리를 잡은 기업들은 끊임 없는 개발로 일군 비즈니스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 최적화된 조직을 만든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기업은 한 분야를 고도로 특화하는 경우가 많아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체제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보다는 특화한 상품이나 분야의 효율성만 강조하기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기조차 힘들다.
장기 집권하는 경영자도 조직의 몰락을 불러오기 쉽다. 이들은 기업의 미래를 위한 전략과 방향에 대한 내부 논의를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다. 오랫동안 기업을 이끌어 소위 '업계통(通)'을 자처하는 임원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키운 노하우에 의존해 경영에 나선다.
문제는 노하우에 대한 집착이다. 집착은 의문 제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성공한 기업의 리더들은 업계의 흐름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듯 하지만 자신이 믿는 경험에 반하는 정보는 평가절하하기 일쑤다.
해멀은 이러한 사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해 새로운 환경에 대한 '업계전문가'의 대응력은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덩치에 대한 집착도 실패의 싹을 틔운다. 인력과 자산,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면 기업 리더들은 게을러지게 마련이다. 이들은 남보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민첩한 전략으로 경쟁에 나서기보다는 막대한 자원을 배경으로 '덩치'로 밀어붙인다.
해멀은 "소위 성공한 기업이 대규모 자원에 의존해 창조적 활동을 등한시하는 것이 포착되면 해당 기업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해멀은 또 성공한 기업은 오만해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무(無)에서 유(有)를 이끌어내는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 '월급쟁이 사장들'은 성공을 혁신과 결단 그리고 불굴의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며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짙다. 따라서 '편집증'적일 만큼 주위의 위협이나 새롭게 부상하는 경쟁업체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기업들은 급변하는 환경에 뒤처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멀은 실패의 씨앗을 키우지 않으려면 "방심보다는 의심하는 것이 낫다"며 "현재 리더가 가진 믿음은 하나의 가설이라고 여기고 안팎의 환경에 대해 항상 개방적으로 사고하라"고 강조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