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분쟁 조정기구는 많은데 책임질 곳은 없다." 금융감독원, 소비자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공정거래위원회. 모두 금융분쟁 관련 민원을 받아 조정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맡은 일이 제각각이라 분쟁조정 업무를 대표할 책임 있는 기구를 꼽기 어렵다. 이 때문에 펀드 판매사가 제대로 설명을 안 해 불완전판매로 손해를 봐도 일반인은 어디서 하소연해야 할 지 막막하다.
문제는 금융분쟁을 조정하는 기구가 난립한 데서 생기고 있다. 소비자원에 가면 금융 전문인력이 부족할 것 같고 금융투자협회를 찾자니 회원사인 금융사 편을 들까봐 염려스럽다. 일관성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조정 성격상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돼 왔다. 은행 직원이 정기예금 같은 펀드가 있다고 해서 이를 샀다고 치자. 원금이 반토막난 뒤에야 이런 펀드는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분쟁조정기구를 찾아 배상 결정을 받더라도 은행이 이를 거부하면 그만이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재판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금융상품이 다양해지면서 분쟁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 금감원에 접수된 민원은 모두 9만8868건으로 작년 같은 때보다 무려 20.7% 늘었다. 특히 펀드 대중화로 증권 관련 민원 증가율은 53.7%나 됐다. 이를 모두 재판으로 해결한다면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책임과 권한이 있는 금융분쟁 조정기구를 만들어 이런 돈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아직 뚜렷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가 있지만 법적 강제력은 없다. 현행 금융분쟁조정제도는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더라도 어느 한쪽이 소송을 내면 이를 중단하도록 하고 있다. 법적 공방으로 가면 사내ㆍ외 법무 전문가를 앞세워 월등한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금융사가 일반인보다 훨씬 유리하다. 일부 금융사는 이를 악용해 민원인에게 조정신청 취하를 강요하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는 것이다.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은 금감원 금융분쟁조정 절차를 진행할 때 금융사가 민원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금융위원회 설치법 개정안'을 15일 국회에 냈다. 실제 분쟁조정신청 이후 금융사가 소송을 제기한 건수는 2007년 420건과 작년 365건에 달했다.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금융분쟁 조정에 관한 법률'도 국회 정무위원회가 발의할 예정이다. 만시지탄하기 전에 국회에서 이런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법안 통과로 소모적인 금융분쟁에 따른 사회적 비효율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조준영 기자 jj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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