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만 해도 축제의 장이었던 이란 테헤란의 광장들이 분노한 시민들로 뒤덮이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테헤란 아자디광장. 테헤란의 상징인 50m 높이의 자유기념탑 앞에 수십여만명의 인파가 모였다. 광장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은 지난 12일 대통령선거가 부정선거로 점철됐다며 선거결과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다.
강경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과 개혁파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 간에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결과는 63%대 34%, 아마디네자드의 압승으로 끝났다.
'부정선거만 없다면 승리는 확실하다'고 믿었던 개혁파 지지자들은 선거결과를 수용할 수 없었고 참을 수 없는 분노는 그들을 광장과 거리로 내몰았다.
이날 집회는 당초 당국이 불허 결정을 내려 취소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하나 둘 모인 인파는 어느새 10만명에 가까워졌다.
'독재자 타도', '독재자에게 죽음을' 이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구호는 광장을 함성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집회에는 무사비 전 총리도 참석, "나의 해결책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 선거의 결과를 취소시키는 것"이라며 "이것이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일"이라고 외쳤다.
시민들의 분노는 가시지 않았지만 광장의 집회는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일부 격분한 젊은이들은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연료통을 들고 광장 인근의 민병대 초소로 접근하다가 총에 맞아 고꾸라졌다.
현지 언론들은 군 초소를 공격하려던 시민 7명이 숨지고 상당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한인 A씨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나도 어제 총성을 들었다. 현지인 사이에는 더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테헤란의 광장은 대선 직전까지만 해도 축제의 광장이었다.
옷과 스카프를 무사비캠프의 상징색인 녹색으로 맞춰 입은 개혁파 후보 지지자들은 지지후보의 이름을 연호하고 함께 춤 추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선거운동을 만끽했다.
지지자들은 때로는 자동차 경적으로 흥을 돋우는가 하면 후보 포스터를 내건 채 오토바이로 질주하기도 했다.
당시 분위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서울광장의 모습과도 흡사했다고 현지 교민들은 전한다.
그러나 바낙광장, 벨리야스르 광장 등 축제 분위기가 넘쳤던 광장은 최루가스와경찰의 곤봉세례가 난무하는 광장으로 변해 버렸다.
13일 개표발표 이후 3천여명이 시위를 벌인데 이어 14일에도 테헤란 곳곳에서 불붙인 타이어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항하는 등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이란 당국은 13∼14일 이틀간 시위대 170명을 체포한데 이어 모하메드 알리 압타히 전 부통령 등 개혁파 정치인들을 잇따라 체포하며 탄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무사비 진영이 운영하던 신문은 정간 조치를 당해 가판대에서 자취를 감췄고 서방언론 취재진에 대한 강제 억류도 속출하고 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무사비를 만나 부정선거 여부를 헌법수호위원회에 조사토록 지시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개혁진영도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집회를 갖도록 당부하며 수습에 나서는 모습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16일 오후에도 4일째 대규모 집회가 예고돼 있는 등 시위대와 경찰간 충돌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주 이란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평온했던 테헤란이 최근 대선을 전후해 크게 술렁이고 있다"며 "시위대와 경찰간 충돌로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위험요소가 있어 교민들에게 시위장소 접근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인터넷뉴스팀 기자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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