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폐 중 최고액권인 5만원권이 발행된 가운데 인플레이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고액권 발행으로 유통 통화량이 늘고, 고액 마케팅으로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 및 전문가들은 5만원권 발행으로 물가가 오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금융 기관 간 거래 비용을 낮추고 사회적 편익이 증가하는 긍정적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 막대한 발행규모, 인플레 없나=한은은 이날 5만원권 화폐 1조 6462억원 어치, 3292만장을 시중에 풀었다. 또 이달 말까지 누계 2조원(4000만장)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수요를 맞춰 충분한 양의 5만원권을 유통시킬 계획이다.
37년 만의 고액 신규 통화 발행으로 시중 유동성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고액권은 개별 은행들이 한은에 적립한 지준금 내에서 발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화폐발행액과 지준예치금으로 구성되는 본원통화 총액에는 변화가 없으며 유동성이 늘거나 인플레이션이 유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별단예금으로 구분되는 자기앞수표를 5만원권이 대체해 자기앞수표 발행수수료 등을 줄여 금융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 최근 제기되고 있는 식사 값을 비롯한 각종 물품의 고액 마케팅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란 전망도 현실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끼니당 5만원에 달하는 식사류는 많지 않은 데다 고가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계층이 적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물품의 질을 높여 5만원에 파는 것보다 물건 값을 5만원으로 낮춰 파는 것이 판매량 증가에 도움이 돼 고액권 발행으로 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다.
정상덕 한은 발권국 발권정책팀 차장은 "지난 1973년 1만원권 발행에 따른 물가 상승률을 조사해 본 결과, 1차 오일쇼크 이외에 물가 상승 요소는 없었다"면서 "국제적으로도 고액권 발행으로 물가가 올랐다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 차장은 "만약 가까운 시일 내에 물가가 오른다면 금융위기로 각 국가들이 유동성을 많이 푼 영향이 가장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만종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소비자들이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와 같은 전자결제수단에 익숙해져 현금 단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5만원권 발행, 어떤 이익 생기나=한은은 5만원권 발행으로 총 5000억원 정도의 자기앞수표 제조 및 보관 비용, 주조차익, 화폐 관리 및 운송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73년 1만원권 발행 이후 37년간 물가는 12배, 1인당 국민소득은 50개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가파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액권이 없다보니 10만원권 등 자기앞수표 발행이 늘며 연간 2800억원 규모의 제조 및 보관 비용이 들고 있다.
이내황 한은 발권국장은 "1만 원권 발행 이후 경제 규모가 많이 커졌고 물가도 올랐다"면서 "고액권이 없다보니 수표가 현금처럼 이용돼 비용이 많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또 통안증권 발행 감소로 1700억원 규모의 주조차익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주조차익이란 국가가 비이자성 부채, 지급준비예치금 조정 등을 통해 얻게되는 이익을 뜻한다.
앞으로 고액권이 자기앞수표를 대체하면 개별 은행들이 지준금을 추가로 적립해야 해 한은의 통안증권 발행 부담이 줄게된다.
고액권 발행으로 그동안 1만원권이나 5000원권을 여러 장 들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도 부수적으로 없어지게 됐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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