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정부, 위기극복 팔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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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6-2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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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싱가포르 금융 1번지인 래플스 플레이스에서 이 나라 상징인 멀라이온이 힘차게 물을 뿜고 있다. 뒤로는 영국 HSBC은행과 말레이시아 메이뱅크 빌딩이 보인다.

싱가포르 금융 1번지 래플스 플레이스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투자자로 금융위기를 무색하게 할 만큼 활기가 넘쳤다.

세계 유수 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사, 보험사가 수십, 수백개씩 들어서 이국적인 열대 정취 속에 마천루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거리가 활기를 되찾은 것은 올해 들어서다. 싱가포르 정부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팔 걷고 나선 덕분이다.

아시아에서 월스트리트로 통할 만큼 금융강국인 싱가포르에서 우리가 처한 금융위기 해법을 찾아봤다.

◆STI지수 연초대비 31% 급등=싱가포르 경제는 빠른 속도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주식시장만 봐도 연초보다 30% 넘게 올랐다.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STI지수는 작년 말부터 26일까지 1761.56에서 2317.95로 무려 556.39포인트(31.58%) 급등했다. 이는 금융위기로 충격을 받기 전인 작년 9월 초 2500선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이런 반등을 앞장서 이끈 것은 싱가포르 정부다.

우리 금융감독원 격인 통화감독청(MAS)은 경제개발위원회(EDB)ㆍ무역진흥회(IES)와 머리를 맞대고 금융위기 초기부터 선제적인 대응을 펼쳤다.

문성필 한국투자증권 싱가포르법인장은 "위기 상황에서 통화감독청이 보여 준 명확한 의사 결정과 방향 제시는 우리 당국도 배워야 한다"며 "싱가포르법인을 설립할 땐 이곳 당국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해외자본을 중심으로 한 금융산업 비중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13.1%나 차지한다.

이곳 당국이 외국기업을 유치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이유다. 이를 위한 밑바탕이 돼 온 것이 아시아 관문 정책(Asian Gateway Policy)이다.

인도네이시아ㆍ말레이시아는 물론 중동ㆍ동북아를 잇는 관문으로서 이점을 백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STX팬오션이 이런 이점을 노리고 싱가포르에 진출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상문 STX팬오션 싱가포르법인장은 "싱가포르는 세계 해운업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심에 있다"며 "STX팬오션도 이런 점에 착안해 이곳 증시에 상장하게 됐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증권거래소(SGX)는 아시아 관문 정책으로 올해 1분기에만 1억8130만 싱가포르달러를 벌었다. 이는 전체 영업이익 대비 40%에 달하는 규모다.

싱가포르 국영투자회사 테마섹도 투자전략 수정으로 국부를 키우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수익률이 떨어지는 금융 섹터 투자를 줄이는 대신 유망한 에너지ㆍ소비재 분야를 더 사들여 성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는 10월부터 세계 최대 에너지회사인 호주 BHP빌리튼 사장을 지낸 찰스 칩 굿이어가 테마섹 최고경영자(CEO)로 온다.

이곳 언론에 따르면 테마섹은 2003년부터 작년까지 5년 동안 미화 400억 달러 이상 수익을 냈다.

같은 기간 세계 주가가 한해 6% 상승에 그칠 때 테마섹은 과감한 포트폴리오 수정으로 해마다 15%씩 투자자산을 불린 것이다.

◆동북아 금융허브 위상 재확인=싱가포르는 중국ㆍ홍콩ㆍ대만을 중심으로 한 화교자본을 유치해 동북아 금융허브로서 위상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메이 링 싱가포르증권거래소 홍보실장은 "경제개발위원회(EDB)와 긴밀한 협력 속에 중국과 미국, 일본을 포함한 10개국 19개 도시에 사무소를 열었다"며 "이를 통해 상장 가능성이 있는 잠재 기업을 적극 발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곳 증시를 시가총액 기준으로 보면 홍콩 자본이 6770만 싱가포르달러로 가장 많다. 동남아와 중국이 각각 4790만 싱가포르달러와 1970만 싱가포르달러로 뒤를 이었다.

이날 현재 싱가포르 증시 상장기업 수는 모두 753개로 이 가운데 39.7%인 299개가 해외기업이다. 국적별로는 중국(149개)이 가장 많고 홍콩(48개)과 대만(18개)이 뒤를 이었다.

싱가포르 증시가 가파르게 반등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화교 자본이 대거 몰려온 덕분이다. 이에 비해 국내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은 모두 7개에 불과하다.

링 실장은 "싱가포르가 화교 자본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중국 본토와 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에서도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다"며 "이 덕분에 금융시장도 빠르게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화교 자본이 싱가포르에 몰리고 있는 것은 이곳 금융산업이 고액 자산가를 위한 자산관리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덕분이다.

김종회 우리투자증권 싱가포르IB센터장은 "싱가포르 금융시장은 시작부터 자산관리를 중심으로 커 왔다"며 "특히 최근엔 막대한 부를 축적한 중국에서 자금 유입이 격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인구 가운데 중국계가 70% 이상인 점도 화교 자본을 늘리는 데 한몫했다. 더구나 싱가포르는 홍콩 광동어 대신 중국 북경어를 쓰는 인구가 훨씬 많다. 홍콩보다 중국 본토 자본을 잡는 데 유리한 것이다.

싱가포르가 중국 베이징과 시간대를 공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성필 한국투자증권 싱가포르법인장은 "이곳이 베이징에 시간을 맞춘 것은 아직 중국 중심적인 사고가 남았기 때문"이라며 "이는 화교 자본 유입에 큰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용훈 기자 adoniu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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