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前 국무총리 인터뷰]
글로벌 경제 위기 한복판에 휘말린 대한민국호(號)는 어떤 전략으로 난국을 타개해나갈 것인가.
미국 뉴욕 금융시장에서 시작된 위기는 주택부문으로, 기업부문으로 연쇄적인 검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대공황 때는 경제학자 케인즈의 ‘정부 지출 확대를 통한 소비진작’ 처방으로 위기 극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오늘날은 새 위기를 이겨낼 효과적인 처방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는 자원 고갈, 환경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제성장기에 최고 경제 브레인으로, 내각 책임자로 개발을 주도했던 남덕우 전 국무총리. 퇴임 이후에는 나라 경제 위기 때마다 정권의 미움을 각오하고 고언(苦言)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으며, 어떤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85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강연과 기고, 토론회 참석 등 현역 경제전문가들 못지 않게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남 전 총리를 서울 삼성동 산학협동재단빌딩 20층 사무실에서 만났다.
-혈색이 좋아 보이시는데요,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가까운 한 호텔의 헬스클럽에 다닐 만큼 괜찮았는데, 최근 안 좋아졌어요. 여기 저기 고장나는 소리가 들립니다만, 특히 허리가 불편합니다. (남 전 총리는 복대를 하고 있었다.) 한의원을 소개받아 치료받고 다니는데 좀 진전이 있는 것 같아요. 치료기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나으면 다시 적극적으로 운동을 할 생각입니다.”
-집무실에 들어올 때 보니 컴퓨터를 보고 계시던데, 최근 근황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나이는 많지만 컴퓨터 없이는 살기 어려울만큼 중요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로 세계의 경제문제, 정세를 검색하고 글을 쓰는 등 일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력 때문에 활자는 좀 크게 쓰고 있어요. 최근 한 일간지에 석달 동안 77회 분량의 회고록을 연재했습니다. 가물가물했던 기억들을 더듬느라 혼났어요. 지금은 오는 14일 한국선진화포럼 토론회 때 강연할 ‘세계 경제 판도 변화와 우리의 대응’ 원고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즘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지식인들이 많습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뭉쳐도 힘든 마당에 내부 갈등이 너무 깊다는 얘기인데요, 최근 나라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세계 경제 상황을 보면 경기 회복의 시기가 언제가 될 지 칠흑 같은 상황입니다. 과거 경험에 비춰 보면 내년부터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워낙 밖(세계)의 변수가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권과 경제계가 똘똘 뭉쳐 한 방향으로 밀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정쟁에만 매달릴 뿐 진정으로 나라의 장래를 위해 화합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정치권이 정강은 다르지만 서로 화합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가 절실하다는 생각입니다.
기업-근로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든, 밖이든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만 나오면 ‘보수’로 몰아부칩니다. 기업이 없는데 근로자가 있을 수 있습니까. 기업과 근로자는 공생관계인 것입니다.
어떤 정부는 ‘편가르기’를 일삼았지만, 이러한 정책은 계층간, 부문간 불화만 일으킬뿐 경제가 성장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정치 이념이나 경제관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도 여전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는 ‘대한민국이 어떤 체제냐’는 기본적인 체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풍조까지 번져 있습니다. 이 부분은 확실히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이념은 분명히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이 이념 하에 ‘대의정치’를 하고, ‘시장경제’ 를 운용하는 겁니다. 미국을 봅시다. 미국은 자유(Liberty)라는 흔들리지 않는 이념이 전 국민의 정신적 구심점이 확고합니다. 전 국민을 아우르는 국가 이념이 단단하기 때문에 다민족, 다인종이면서도 마치 하나의 민족처럼 결집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문제도 그렇습니다. 실용주의, 실용주의 하는데 어느 정권이든 국민들을 배불리 하는 정책을 펴야 하며, 당연히 실용주의적인 정책을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를 살찌우려면 당연히 기업을 키워야 하고, 기업의 사기를 북돋우도록 실용노선을 펴야 하는데 마치 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 는 등의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글로벌 환경규제까지 더해지고 있는데요, 우리 국민과 정부는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나가야 하겠습니까.
“현 정부는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비교적 효과적으로 대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앞으로도 세계 경제환경이 급변할 것이기 때문에 미리미리 대처를 하지 않고 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적인 환경규제입니다. 1997년 12월 일본 교토(京都)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총 38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규정(교토의정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토의정서는 세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2001년 탈퇴한데다, 선진국에 대한 부담이 불공평했다는 것,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부상한 중국, 인도를 포함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는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릴 기후변화협약 15차 총회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적된 여러 사항들을 조문에 담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감축 의무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단순한 개발시대를 넘어 환경과 경제발전을 병행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현 정부의 ‘녹색성장’정책은 시의적절한 전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경제 위기 극복을 앞당기기 위해 어떤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겠는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반(反)기업정서를 해소하는 것입니다. 기업이 살아야 제품을 수출해 나라 경제를 살찌울 수 있습니다. 한국경제가 불과 30~4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게 된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기업가 정신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한국경제가 이번 글로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곳곳에 남아있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줘야 합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북한의 위협 속에서도 숱한 경제위기를 헤쳐왔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저력을 살려 이번 경제 위기도 얼마든지 극복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대담=박정규 편집국장 /정리= 이보람기자 boram@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