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을 놓고 정치권이 또 말장난이다.
한나라당은 6일 법 시행을 1년 유예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당초 2년이던 것이 1년 6개월, 여기서 또 1년으로 후퇴했다. 말은 3번 바꿨지만 걸린 시간은 2주도 채 안 된다.
민주당도 다를 바 없다. 한나라당의 발표 뒤 ‘6개월 유예론’이 순식간에 ‘유예 자체가 검토대상이 될 수 없다’로 바뀌었다.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꿔놓고 상대당 탓 등 여론몰이는 일등이다.
이렇게 옥신각신 하는 동안에도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해고사태는 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일 법 시행 이후 단 사흘간 전국 208개 사업장에서 1222명의 비정규직 실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열쇠를 쥐고 있는 여야 모두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염두에 두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국회의원은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프로들이다. 하지만 한 쪽(한나라당)은 상대당의 주장을 배려한다는 듯한 늬앙스를 풍기나 수시로 말을 바꾸면서 직권상정 수순 밟기에 들어간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 쪽(민주당)은 “2월에도, 4월에도 직권상정 전적이 있다”며 대화 테이블에 나서길 거부하는 등 아마추어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직권상정 뿐인 국회는 존재 가치가 없다. 정치는 협상과 조율의 정수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잘못된 것은 서로 비판하는 과정에서 보완된 결론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정치를 못한다는 차원을 떠나 포기 수준이다.
장자는 도(道)는 섭리지만 물고기가 막상 물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지금 여야가 딱 그렇다. 직권상정과 하반기 정국주도권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국민이라는 ‘물’을 망각한 상태다.
100만명 이상의 생계가 달린 법은 자신들 정치논리 대로 손쉽게 바꾸면서 ‘서민을 위한다’는 립서비스는 꼬박꼬박 챙기는 게 신기할 정도다.
최근 모 의원과 언론 중립성에 대해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대화에선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을 2주 만에 흡혈귀에서 황제폐하로 고친 프랑스 신문 사례까지 거론됐다. 물론 지금 언론도 잘하고 있다고 반박은 못하겠다.
하지만 이 의원은 바로 그 시각에도 해고통보를 받고 살 길이 막막해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심정은 헤아려 봤을까.
아주경제= 안광석 기자 novu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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