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을 밑도는 주식은 매도 보고서를 내겠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증권가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말이기도 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상장사를 분석ㆍ평가한 뒤 보고서를 내야 한다. 내ㆍ외부 압력이 작용해선 안 된다.
그러나 증권가는 이런 기대를 번번이 저버렸다. 4~6월 석 달 동안 증권사가 낸 상장사 분석 보고서를 보면 전체 3037건 가운데 매도 의견을 담은 것은 단 1건에 불과했다. 사실상 주식을 팔아야 할 때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선진국 증권사는 주식을 사거나 팔아야 할 때를 분명하게 짚어 준다. 미국만 봐도 보고서 절반 이상이 매도다.
증권사 수익구조에서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법인영업은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기관이 보유한 종목을 매도하란 보고서를 쓰기 어려운 이유다. 모든 보고서 끝엔 외부 압력이나 간섭 없이 작성됐다는 문구가 들어간다. 하지만 내부에서부터 자체 검열이 이뤄진다. 아직은 애널리스트 스스로 소속 증권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재무상태가 크게 나빠진 상장사를 취재한 적이 있다. 이 회사에 대해 묻자 애널리스트는 대뜸 답변을 거절했다. 해당 회사에 대해 언급했다가 곤욕을 치렀단다. 이 회사는 물론 지분을 보유한 투자자까지 직ㆍ간접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보고서가 내ㆍ외부 압력에 휘둘리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를 개선하려면 지금처럼 애널리스트가 부당한 공격을 받아선 안 된다. 물론 증권가에서 공유하는 객관적인 분석 기준에 따라 보고서를 낸 경우에 한해서다.
마침 반가운 변화도 있다. 증권사 하나가 투자자에게 필요한 말이라면 주저 없이 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증권사 신임 리서치센터장은 객관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매도 의견을 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쉬운 게 있다면 애널리스트 독립성을 보장할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이런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고 독립적ㆍ객관적 보고서로 증권가에 새 바람을 일으키기 바란다.
문진영 기자 agni2012@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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